임은택(林銀澤)
묘역번호: 1-49
생 애: 1945.04.10 ~ 1980.05.21
성 별: 남
출 생 지: 담양
사망 원인: 칼빈 총상
사망 장소: 광주교도소 부근
기 타: 상업
유 족: 최정희(처)
“광주에서 군인들이 빠져나가, 인자 안전하다고 합디다.”
1980년 5월 21일 오후, 임은택 씨와 함께 일하는 인부들이 소를 사서 들어오면서 하는 소리였다. 그렇지 않아도 광주에 나가 수금을 좀 해야 할 판이었다. 광주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는데 그것도 궁금했다. 얼마 전에 팔았던 차가 말썽을 일으켜 광주에 가서 해결을 봐야 한다는 고귀석 씨, 그리고 인부와 함께 차를 운전하고 갈 사람, 모두 네 사람이 픽업 차에 올라탔다.
그들이 광주에 들어서고 있을 때, 한 차례의 총성이 그들의 귓전에 와 닿았다. 전남대를 출발한 계엄군의 트럭들이 교도소에 몰려들고 바리케이드 작업을 하면서 움직이는 그 무엇에건 총을 쏘았던 것이다. 총소리에 놀란 일행은 광주로 진입하는 것을 포기하고 차를 돌렸다. 그들이 막 고속도로를 벗어나려는 찰나 귀를 찢는 총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그들이 탄 차는 벌집이 되고 말았다. 조수석에 앉아있는 임은택 씨가 총에 맞았고 고귀석 씨가 총에 맞아 신음 소리를 냈다. 운전을 하던 사람도 총에 맞았다. 여전히 총성은 멎지 않았고 고귀석 씨와 임은택 씨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렵게 겨우 숨을 내쉬고 있는 그들을 데리고 도망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다른 두 사람은 겨우 그곳을 빠져 나왔다.
일행이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 하고 그곳을 벗어날 때까지도 총에 맞은 두 사람은 살아있었다. 아직은 숨을 쉬고 있으니, 두 사람은 군인들에게 발견되어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잠시 해보았다. 그러나 그 역시 너무나 순진한 생각이었다.
“이 새끼들 다 죽여버려야 해!”
고함 소리는 하늘을 가르고, 아직 숨이 붙어 있던 두 사람은 필경 군인들의 손에 끌려 죽음을 맞는 순간까지 군화발과 몽둥이에 짓이겨졌음이 분명하다. 열흘이나 지난 다음에 발견된 임은택 씨의 두손은 뒤로 묶인 채였고 온몸은 또 피멍이 들어 있었다...
“당신이 없어서 너무 힘들었어라. 어쩌면 그리 야박허요. 나랑 애들은 어떻게 살라고 그렇게 쉽게 떠나부렀소. 당신 탓이 아닌 줄은 알아도, 그래도 나는 당신이 원망스럽당게라. 힘이 없는 내가 당신이나 원망해야제 별 수 있당가라. 그래도 시방은 괜찮어라. 힘들어도 당신 욕 안 묵일라고 우리 자식들 잘 키웠어라. 내가 고생고생 함시로도 대학까지 보내고 결혼도 시켰잖애라. 자식들이 내 마음 알고, 지들이 알아서 잘 해준 것이 고맙기만 허제라. 글고 아주 암시랑 안허다믄 거짓말이겄지만 나도 인자는 견딜 만허요. 살다보니 살아있는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요. 긍게 당신도 걱정허지 말고 인자는 편히 쉬시오. 아이고, 불쌍한 양반.”
5․18 민중항쟁 증언록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中에서 http://www.raysoda.com/hyunre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