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기억 속의 풍경
아직도 어설프기 짝이 없긴 하지만
내가 사진을 찍은지도 벌써 2년이 훌쩍 지나갔다.
그냥 찍기만 하면 사진이 되는건줄 알았더니만
시간이 지날수록 셔터를 누르는게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풍경이 거기 있어서 그냥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의 풍경이 거기 존재할 때까지 기다리는 마음은
설레기도 하지만 때로는 지루하고 지친다.
구름을 기다리고,
빛을 기다리고,
사람을 기다리고,
곧 벌어질 상황을 기다리고,
빨강색 자동차,
혹은 노랑색 우산을 기다린다.
오늘, 내 마음의 프레임이 고정될 때까지
나는 베른의 어느 다리 위에서 반나절을 머물렀다.
똑같은 컷 100장을 찍고도 거기 내 마음의 풍경은 없는 날이 있다.
하지만 그런 날일지라도 나는 행복하다.
100번 이상 똑같은 풍경을 뚫어지게 보다보면
남들이 한번 훑고는 그냥 지나쳤을 아주 소소한 것들까지도
생생한 추억으로 하나하나 가슴에 새길 수 있으니까.
그게 내가 남들보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다니는 이유다.
그게 내가 풍경을 찍는 이유이고,
그게 내가 사진을 사랑하는 이유이다.
여행일지 중
2006/09/05 BERN in Swi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