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연(李鐘連) 묘역번호: 1-46 생 애: 1963.02.23 ~ 1980.05.21 성 별: 남 출 생 지: 나주 사망 원인: 차량사 사망 장소: 나주군 문평면 장산리소재 국도상 기 타: 재수생 유 족: 이호균(부) 종연이는 나주 금성중학교를 졸업했다. 광주로 고등학교를 가려고 시험을 쳤다가 실패하고 재수를 하고 있었다. 5월 항쟁이 일어나고 종연이는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잦았다. 친구들과 광주까지 나가 시위에 참여한 것이다. 아들이 집에 들어오지 않고, 광주에서는 군인들이 총칼을 휘두른다고 하니 부모는 애가 타서 견딜 수가 없었다... 21일, 그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던 종연이가 들어왔다. 점심때쯤이었다. 손에는 총이 들려있었다. 며칠씩이나 집에 들어오지 않아 걱정을 하던 판에 아들이 버젓이 총까지 들고 들어왔다. 나주의 군민들에게 광주에서 벌어지는 군의 살육현장을 알리기 위한 시위차량에 종연도 함께 몸을 싣고 내려왔다가 집에 들른 것이다. 아버지는 한편 안심을 하면서도 아들을 야단쳤다... 점심을 먹고 방에 있나 싶더니 종연은 어느새 사라졌다. 그는 밖으로 나가 다시 시위차량에 몸을 실었다. 어린 종연의 가슴에는 두려움보다는 뜨거운 정의감과 물러설 수 없는 자존심이 더욱 강하게 새겨져 있었다. 종연이가 탄 차는 나주경찰서에서 무기를 획득, 다시 광주로 향했다... 그런데 효천쯤에서 산에 매복하고 있던 군인들이 시민군의 차를 향해 총격을 가했고, 더 나아갈 수 없었던 그들은 영암 방면으로 차를 돌렸다. 종연이가 탄 트럭이 나주 왕곡면의 국도에 들어섰다. 트럭의 뒤에 타고 있던 종연이가 모퉁이를 도는 차의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차에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죽어 들어온 아들을 보고 어머니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는데, 서울에서 온 학생들이라는 그들은 그렇게 말했다. 젊은 청년들의 마음을 모르지 않지만, 누가 종연이를 대신해줄 수 있다는 말인가. 아무도 종연이를 대신해 줄 수 없다. 제 형들도 그것은 해줄 수 없는 일이었다. 비통한 눈물을 흘리며 종연이를 쓰다듬는 아버지의 손이 떨렸다. 오열하는 아버지의 온몸이 들썩이지만 마당에 모인 동네사람들도, 그리고 종연이를 데리고 온 청년들도 아버지의 마음을 위로해주지 못했다... 5․18 민중항쟁 증언록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中에서 http://www.raysoda.com/hyunreen
현린[玄潾]
2006-10-15 2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