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자(李聖子) 묘역번호: 1-44 생 애: 1965.10.30 ~ 1980.05.21 성 별: 여 출 생 지: 광주 사망 원인: 칼빈 총상 사망 장소: 금남로 동구청 앞 기 타: 무직 유 족: 이재현(부) 이재현 씨에게는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이 행복하던 때가 있었다. 정말로 어떤 부귀와 영화도 탐나지 않았고, 어떤 다른 행복도 자신의 행복과 바꿀 마음이 없었다. 그는 정석심 씨와 결혼을 하고 장성군 진원면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그런데 결혼 6년째가 되어 가는데도 자식이 생기지 않았다. 걱정하는 친구의 소개로 점쟁이를 찾아갔더니 늦게 손자 같은 아이가 생길 것이라는 말을 했다. 그 말에 희망을 갖기는 했지만 언제 생길지 모르는 아이를 기다리며 부부만 지내는 것이 적적하고 외로웠다. 그래서 그들 부부는 고아원을 통해 여섯 살 여자아이를 입양했다. 그 아이가 성자다... 21일, 점심을 먹은 성자가 학원에 간다고 친구들과 나섰다.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사람들의 비명과 아우성을 들은 부모들은 성자를 말렸다. 하지만 하루도 빠져서는 안 된다고 우기던 성자는 부모가 잠시 시선을 뗀 사이에 나가고 없었다. 금세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던 성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걱정이 되어 가게 앞을 서성였다. 딸이 모습을 드러낼 쪽으로 목을 빼고 그 예쁜 얼굴이 보이기만 기다렸다. 옆 가게 양복점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성자가 죽었다고 말을 해준 이는 포목점 옆 양복점 종업원이었다. 성자와 친구들이 도청 앞을 지날 때 둘은 옆집에서 자주 보던 얼굴이라 서로 인사를 하고 스쳐 지나고 있었다. 그때, 건물 위에서 총성이 울리고 길을 가던 성자가 피를 흘리며 그 자리에 쓰러져버렸다. 총소리에 놀란 청년이 뒤돌아보았을 때는 이미 성자의 푸른색 스웨터가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학생들이 와서는 쓰러진 성자를 차에 싣고 병원으로 옮긴다고 데려갔다... 가슴에 뻥 뚫린 총구멍이 그대로 아버지의 가슴에 되돌려졌다. 병원에 성자를 두고 돌아온 아버지 이재현 씨는 아픈 가슴을 이겨내지 못했다. 26일 상무관으로 시신이 옮겨졌다... 5.18 민중항쟁 증언록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中에서 http://www.raysoda.com/hyunreen
현린[玄潾]
2006-10-10 0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