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호(李炅湖)
묘역번호: 1-42
생 애: 1960.06.03 ~ 1980.05.21
성 별: 남
출 생 지: 광주
사망 원인: 칼빈 총상
사망 장소: 장소 불상
기 타: 식당종업원
유 족: 이병관(제)
머리가 으깨진 사람, 팔다리가 떨어져 나간 사람, 온몸에 멍이 가득하고도 부족해 곳곳이 찢겨진 사람, 칼에 난자당한 몸뚱이의 사람....... 처참한 시신들이 병원마다 찬 시멘트 바닥에 방치되어 있었다. 가족들이 확인된 시신은 흰 천으로 가리기라도 했지만 그렇지 않은 시신은 함부로 펼쳐져 있었다.
심한 악취에 곁에 가기도 힘들지만 이성자 씨와 남편은 동생을 찾아야 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동생 경호처럼 보이는 이는 없었다. 바로 곁에서 아들의 이름을 부르는 어머니의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자기들처럼 가족을 찾지 못해 어쩔 줄을 모르고 시신들을 헤집는 이들의 흐느낌이 사방에서 들려와 더욱 가슴이 미어지는 듯 아팠다...
다시 전남대병원으로 달려갔다. 시체들을 다 살펴보아도 경호가 보이지 않았다. 처음부터 다시 찾아보기로 하고 구석구석 좀더 자세히 살폈다. 영안실의 뒤쪽에 아무 것도 깔리지 않은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축 쳐져 있는 경호의 시체가 있었다. 얼굴이 퉁퉁 부어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찢겨진 옷이 경호의 옷과 같았다. 가슴에 작은 총탄구멍이 있을 뿐인데 경호는 온몸이 피로 범벅이 되어 있고 썩은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해 5월, 경호는 날마다 시위에 참여하는 듯 했다. 저녁 늦게야 들어오는 경호에게 “어디 갔다 오느냐”고 물으면 경호는 “시내에 데모 구경 갔다 온다”고 아주 가볍게 이야기 했다. 곁에 있는 것조차 모를 만큼 조용하고 차분한 경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이야기할 때는 분명했다. 자신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은 분명하게 거절할 줄을 알고 옳다고 생각되는 일은 또 강하게 밀고 나갔다. 사려도 깊은 청년이었던지라 누나나 매형에게 걱정 끼치지 않으려고 시내에서 보고 들은 계엄군의 만행에 대해서는 입을 꾹 다물었다. 경호가 편하게 이야기하기에 누나는 그럴 것이라고만 믿었다. 그래도 마음을 놓을 수는 없어서 21일에 다시 나가려는 동생을 말렸다...
5월 21일, 정호는 아침에 금남로에 다녀와서는 “도청 앞에는 아무 일도 없다”고 누나에게 거짓말을 했다. 점심을 먹고는 누나의 말을 듣지 않고 집을 나가더니 그렇게 시신으로 돌아왔다...
5․18 민중항쟁 증언록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中에서 http://www.raysoda.com/hyunre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