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인섭(梁寅燮)
묘역번호: 1-37
생 애: 1947.01.02 ~ 1980.05.21
성 별: 남
출 생 지: 광주
사망 원인: 타박사
사망 장소: 장소 불상
기 타: 상업
유 족: 손창순(처)
광주공원 앞 서동에 살던 그는 5월 18일 이후 광주에서 자행되는 전쟁 같은 시위진압을 목격했다. 공수부대가 광주에 투입된 이후 공원 앞 광장은 흡사 전쟁터와 같았던 것이다. 그가 다녀왔던 베트남전보다 더 잔인한 광경에 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가 운영하던 당구장은 문을 닫은 상태였다. 양인섭 씨는 시위대열에 끼고 말았다...
그렇게도 애타게 찾아 헤매던 남편이지만, 제발 도청에서는 발견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남편에게 어떤 변도 생기지 않았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싶었다. 그러나 아내의 간절한 바람은 무너지고 그녀의 남편 양인섭 씨는 도청 지하실에 이미 싸늘히 식은 몸으로 누워 있었다.
얼굴은 피범벅이고 이마에는 작은 총구멍이 나 있었다. 그런데 머리 뒤를 보니 펑 뚫려 있었다. 계엄군의 정확한 사격의 결과였다. 시민들이 그를 도청 옆, 이용도외과병원으로 옮겼지만 그는 안타까운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남편의 피 묻은 얼굴을 눈물로 닦고 새로운 옷을 갈아 입혀 입관을 했어도 관은 또 금세 피로 물들었다.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던 것일까? 30일 망월동 묘지에 안장하기까지 피로 물든 옷을 다시 갈아입히고 관에 넣기를 다섯 번씩이나 반복했다...
아이들이 어렸기에 유족회원들은 그녀를 배려했다. 진상규명을 위한 상경투쟁이 있거나 거리 시위가 있을 때에는 주로 홍보하는 일을 맡아 했다. 전두환 정권 때는 광고사에서 시위용 인쇄물이나 플래카드를 제작해주지 않아 직접 광목을 사다가 매직으로 플래카드를 만들었다. 어렵게 만든 홍보물들을 유족회에 건네줄 때의 가슴 뿌듯함을 남편만은 알고 있으리라...
5․18 민중항쟁 증언록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中에서 http://www.raysoda.com/hyunre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