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권하는 사회 5 2500원 백반. 허름한 골목. 오래된 모텔 꿈쩍않고 빛 발하는 지하철 5호선 종로3가역 낙원상가 옆 골목으로 들어서면 지친 어깨 몇을 만난다. 오후 7시에서 8시 사이 아직 어둑함이 덜할 때 개처럼 킁킁대며 냄새를 따라 구두굽을 차면 낡은 자전거 한 대 담벼락에 어슷 쉬고 도란도란 저음의 목소리들이 주거니받거니 박사 칭호와 선생 칭호를 번갈아 불러주며 막걸리 한 사발 목넘이에 바쁘다. 덜 닦인 스텐레스 둥근 식탁에 뿔겋고 퍼런 낡은 플라스틱의자 하나 빼 앉으면 사람 수 따라 당연 가정식 백반이 나온다. 뜨끈뜨끈한 쌀밥, 오늘 하루 늘어진 피로만큼이나 쌀심이 없어 한 숟가락 퍼올려도 도로 흘러버리지만 내 어머니 같은 아줌마의 손길이 쓱싹 식탁을 훔치고 둥그런 상에 우거지국 한 사발과 몇 가지 반찬이 나온다. 맥없는 밥 한 가득 입 안에 넣고 젓가락을 움직일라치면 가짓수는 많아도 손 갈 곳이 없다. 달디단 새끼멸치들 식용유에 버무려져있고, 김치 대신 열무김치 올라와있어도 기심심하고, 장에 절인 깻잎지도 달디달아 결국 씹을 만한 것은 무채 뿐이다. 맛없냐. 반찬들이 올려다보며 혀를 찬다. 밥은 이제 됐고 아줌마 여기 막걸리 한 통! 구겨진 양복, 비뚤어진 넥타이, 목을 감싼 분홍넥타이만 신혼 시절 기억을 불러올 뿐, 통장으로 고스란히 입금되는 봉급도 살기 빠듯한 데 계절은 잘도 바뀌어 가을이다. 나는 또 알토란같은 자식들과 분홍빛 사랑을 이적지 꾸고 있는 아내를 위해 아름다이 목을 매기로 한다. 그래도 먹을 만 하지. 안 먹는 것보단 나을 것이야. 요즘 안 먹어도 배가 부른다. 침체된 경제구조 속에서 접대만 늘어가고 성과는 없으면서 계속되는 음주가무로 배불뚝이 지방간 되고 어느새 치고 올라오는 후배 등살 학력 등살 낙하산 등살에 또 한 번 목을 매기로 한다. 그래 만원짜리 밥을 거침없이 먹던 내 아내를 나무라지 말자. 차라리 내 2500원 가정식백반에 감사하고 그보다 못한 밥벌이에 내심 내 잘못 아니라해도 미안해하고 그저 감사한 삶이다 감사한 삶이다 찬양할 것이다. 남의 집살이 하며 부자 교회에 십일조 꼬박꼬박내는 어떤 여자의 하느님에게 차라리 감사하자. 여보게들, 어느 날 플라타너스 이파리 가장자리 누우래져서 행여 당신 발밑으로 찾아가거든 홀로라도 허름한 골목을 찾아보시게나. 그리고 가정식 백반이 선물하는 따뜻한 밥 한 그릇에서 사람 사는 세상의 맛을 안아볼 것이다. 비록 잡곡 섞이지 않고, 담백한 반찬이 아닐지라도 웰빙웰빙하는 그 사람들의 의뭉한 밥상을 부러워하지 말기를. 그리고 옆구리엔 긴밤 함께 이야기해도 좋을 아내와 자식을 위한 주전부리를 사갈지어다. 그래도 내 머리 둘 곳 내 목 풀어줄 이들이 아니던가.
알섬
2006-09-17 1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