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복(安秉福)
묘역번호: 1-35
생 애: 1960.10.17 ~ 1980.05.21
성 별: 남
출 생 지: 광주
사망 원인: 차량사
사망 장소: 장소 불상
기 타: 재봉사
유 족: 김금란(모)
병복이는 어려서 뇌종양과 소아마비를 앓았다. 그래서 다리가 불편했다. 불편한 몸이었지만 건강했다. 어머니를 위하는 마음 또한 남달랐다. 가난한 생활에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을 시켰지만 스스로 재봉 일을 배워 재봉사로 일하고 있었다. 6남 1녀의 넷째인 그가 벌어다 주는 돈은 많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가게를 꾸리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 그런 아들이 자전거를 타고 나가서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어머니는 불안한 마음을 누를 길이 없었다. 아들이 ‘학생도 아니고 몸도 성치 않은데 군인들이 무슨 짓이야 하겠냐?’ 싶은 생각도 들었다. 어머니는 아들을 찾아 나섰다. 어디에선가 ‘뭔 일 있나?’ 하는 얼굴로 불쑥 나타나주기만을 바랐다...
피투성이의 아들을 붙잡아 흔드는 어머니의 울부짖음이 하늘을 찔렀다. 병복이는 21일 도청에서 차에 치였다. 목격자가 분명하지 않아 누구의 차에 치였는지, 무엇을 하다 사고를 당한 것인지 아무 것도 알 수가 없다. 단지 알 수 있는 것은 도청에서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있던 21일, 그 아수라장의 도청에서 차에 머리가 으깨지고 한쪽 어깨마저 떨어져 나간 채 쓰러져 있었다는 것이다...
어느새 손가락 발가락이 썩어 들어가는 시신을 쓰레기차에 실어 망월동에 묻고 돌아온 어머니는 식음을 전폐하고 누웠다. 지워지지 않는 아들의 모습에, 아들을 앗아간 이들에 대한 분노에 잠도 이룰 수 없었고 마음 둘 곳도 없었다. 막내아들의 권유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고, 오로지 신앙에 마음을 맡겼다. 그러니 견딜만해졌다. 그리고 새로운 마음도 생겼다...
반백을 훌쩍 넘긴 부모가 경찰의 몽둥이와 최루탄을 피해 서로 길을 열어주며 달아나는 슬픈 그림이 우리 역사에 아프게 남아 있다. “내 아들 살려내라”고 외치던 병복 군의 아버지는 숱하게 맞은 매에 골병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투쟁한 결과의 작은 결실인 몇 푼의 보상금을 만져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셨다...
5․18 민중항쟁 증언록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中에서 http://www.raysoda.com/hyunre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