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 별다른 이야기가 없어도 헤어지기 싫은 적 있지. 85년이던가. 지금이야 맥주가 보편화되었지만 그때엔 막걸리에 시디신 김치 쪼가리 하나가 전부였어. 그렇지 않으면 깡소주 한 병에 머리가 핑 돌 정도의 검은멍투성이의 깎두기. 어떻게 익혔는 지 맛은 좋아 시큼달큼한 그 깎두기 조각에 희끄무레한 고춧가루로 버무려졌지만 금새 한 접시를 비워냈고 어떤 이야기든지 그것에 잘 배어들었어. 어쩌다 주머니에 용돈을 타온 선배님들이 납시면 그때서야 짜장면에 소주를 먹는 일이 생겼는데, 그것도 2차로 옮겨지면 버스 토큰만 빼고 다 주머니를 털어 술값을 마련하곤 했지. 그 시절은 선배는 왕이다라든가 선배는 하느님과 동격이라는 지금은 콧방귀가 절로나오는 구호를 외치면서 술 못 마시는 사람도 주는 족족 꿀꺽 삼켜야했고 발그레해지면 잔디밭으로 나가 또다시 고린내나는 선배의 낡은 구두를 잔 삼아 부어라마셔라 마시며 노래를 불렀지. 움직이는 노래방. 노래 일발 장전. 발사. 참 군대문화는 대학 문화로 뿌리 깊이 자리잡혀있었던거야. 군대를 안 간 사람도 다녀온 사람들 이야기 몇 번만 들으면 이미 군대 제대한 사람이 될 정도였지. 그렇게 지내던 시절. 몇 번의 자리를 옮기고 모두들 차비 조차 떨어져 없을 때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가야할 시간임을 알게되고 한 자리에 머리를 맞대고 발까지 모았어. 통금도 없고 '자유'라는 이름으로 뭉친 몇 사람들도 갈 사람 가야한다면 발을 모았지. 물론 그 노래 끝에 잊지 않고 부르는 양희은의 '상록수'는 명곡 중에 명곡이었어. 나중엔 안치환의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로 바뀌기도 했지만 말이야. 어쨌든 발모아 이야기를 해보자면, 그것은 동아리 구호던가 그 시대의 한창 이슈를 한 번 외치고 집으로 돌아서는 것인데 다 하고 나서 갈 사람 가라는데도, 이상하게 세어보면 한 두 사람 빼고는 다 남아있는거야. 그리고 푸하하하. 그 다음 이야기는 말해 무엇해. 근처에서 자취하는 선후배네 가서 한 달치 양식을 축내고 등교를 함께 하는거지뭐. 아 그 발냄새. 시큼한 땀냄새. 아침이 다 되어 잠이 든 사람들은 의지라기보다 술이 잠재웠다고 봐야지. 심지어 내일이 시험인 데도 함께 어울려 놀았던 선배도 있었는데, 그 선배는 술이 좀 취한 상태에서의 몽롱함으로 시험을 치면 더 잘친다는 허무맹랑한 전설을 만드는데 일조한 사람이었어. 하 이렇게 놀았던 사람들은 지금 그 날들을 추억하며 또다른 모임을 이어가고 있어. 술이든 차든 그 무엇이든 수다를 통한 생산은 삶을 살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언제고 별 할 말도 없이 헤어지기 싫은 적이 있잖니, 안 그래.
알섬
2006-09-11 10: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