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두환(安杜煥)
묘역번호: 1-34
생 애: 1935.05.27 ~ 1980.05.21
성 별: 남
출 생 지: 광주
사망 원인: 타박사
사망 장소: 전남대 정문 앞
기 타: 난방공(부산파이프)
유 족: 김옥자(처)
안두환 씨가 쓰라린 눈과 얼굴을 물로 씻고 화장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부인은 방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그때 우당탕탕 소리와 함께 대문이 열렸다. 계엄군의 발길질에 대문 잠금쇠가 오그라들면서 문이 열리고 말았다. 뛰어들어온 세 사람의 계엄군은 화장실에서 막 나오는 안두환 씨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그러고는 들고 있는 진압봉으로 안두환 씨의 머리를 내리쳤다...
‘나오지마!’ 남편은 그렇게 말을 하고 있었다. 어찌해야 하는지 아내는 그저 발을 구르며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나가서 말려야 하는데...... 그러나 그녀가 나간다고 달라질 것이 없다는 것을 남편은 알고 있었다. 아내마저 다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오후 내내 사라진 남편을 찾아다녔으나 남편의 흔적도 찾지 못했다. 밤새 마을 어른들과 밤을 밝히며 기다렸지만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새벽녘에 통장이 혼자 학교 안을 돌아보다가 발견했다면서 남편의 피 묻은 명함을 건넸다. 보일러 일을 하는 남편이 늘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다니던 남편의 이름이 박힌 명함이었다...
“혹시 남편의 허리띠를 보면 알아볼 수 있소?”
당연한 일이 아닌가? 수위는 앞장서서 가더니 이학부 건물을 가리키며 들어가 보라고 했다. 이학부 건물 앞에 탱크가 한 대 놓여 있었다. 김옥자 씨는 조심스럽게 발을 딛어 탱크 안을 들여다보았다. 벌건 핏물이 흥건히 고여 진동에 흔들렸다. 이학부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역시 건물 내에도 피는 흥건하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의 핏물이 바람에 출렁인다. 계단 밑에 핏물에 적셔낸 듯 붉게 물든 한 무더기의 옷들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남편이 입었던 옷들도 거기에 있었다. 피에 절어 찢겨진 남편의 바지와 점퍼를 주어들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허리띠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이 남편의 것임을 확인하는 순간 그녀는 정신을 잃었다...
그래서 시체를 실은 차가 갔다는 조대병원 영안실로 가보았다. 8구의 시신을 하나하나 살폈다. 마지막 서른 살 쯤 되어 보이던 그 시신, 그것은 남편의 사체였다. 매를 맞아 시퍼렇게 멍이 들고 으스러진, 알아보기 힘들만큼 일그러져 있지만 분명 남편이었다...
막내아들은 겨우 네 살, 나머지 5남매는 모두 학생이었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교육을 받아야 하는 아이들과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 할 줄 아는 일이 없던 그녀는 죽음 말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유족회 행사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려는 심산으로 그들은 김옥자 씨를 전남교육연수원에 취직시켰다. 그녀는 그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네 놈들이 해주는 것은 죽어도 안 받는다”라며 처음에는 퉁을 놓았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살려니 그것이나마 붙잡아야 했다. 그래서 1993년 9월부터 지금까지 그곳에서 청소부로 일하고 있다...
5․18 민중항쟁 증언록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中에서 http://www.raysoda.com/hyunre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