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천(朴仁千)
묘역번호: 1-31
생 애: 1954.05.05 ~ 1980.05.21
성 별: 남
출 생 지: 나주
사망 원인: 칼빈 총상
사망 장소: 장소불상
기 타: 운전사(동명택시)
유 족: 박영철(형)
그런데 계엄군의 검문이 사라진 것은 그날 오후 잠깐이었다. 박인천 씨가 시위차량에 올라타고 광주로 향하던 그 시각은 계엄군이 이미 외곽으로 철수를 마무리하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봉쇄작전에 들어가 있었다. 오후에 광주를 빠져나갔던 많은 차량들이 그들의 총에 전복되고 수많은 인명에 죽음의 그림자가 검게 드리워졌다. 나주에서 차를 타고 송암동을 거쳐 광주로 들어오려던 박인천 씨가 탔던 차도 광주, 나주를 잇는 도로의 양쪽 들과 산에 매복하고 기다리던 계엄군의 총을 피하지 못했다. 그의 사인은 대퇴부 관통상이었다...
함께 울어줄 줄 알았던 세상은 너무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하늘마저 이들의 아픔과는 무관한 듯 맑고 푸른 햇살과 바람이 그들을 스치고 있었을 뿐이다...
1997년 5월 22일, 신묘역에 형님을 안장하고 발길을 돌리는 영철 씨는 그저 착잡하기만 했다. 형님이 돌아가셨다는 것만 분명할 뿐, 그의 죽음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정확한 시간과 장소조차도 알지 못하고, 죽었다고 전해주는 소리만으로 죽음을 확인 받아야 했다. 그로 인해 부모님은 병들고 형제들의 가슴에도 멍이 들었다. 그렇게 17년 세월을 보내고 다시 망월동으로 모셔야 한다고 하니 그렇게 했다. 무엇을 알아야 하고 무엇을 인정해야 하는지, 무엇을 용서해야 하는 것인지, 어느 것 하나 분명하게 잡히지가 않았다. 아직도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불분명한 채로 덮어버리려고 애쓰는 세상이 그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었다...
5․18 민중항쟁 증언록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中에서 http://www.raysoda.com/hyunre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