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롱지다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오빠와 함께 밥을 먹으라며 차려놓은 밥상위엔 널브러진 숟가락에 밥풀이 묻어있고 상 위에 김치와 계란 말이에도 덕지덕지 쌀알들이 붙어있었다. 오빠는 들어오자마자 가방만 던져두고 놀러가버린 것이다. "엄마 올 때까지 동생 잘 봐, 저 번처럼 동생 이마에 상처나면 혼날 줄 알아. 어디 가지말고 꼭 손 잡고 동생이랑 놀구 대문 밖은 아예 나갈 생각도 말아 알았지" 엄마의 굳건한 말에도 오빠는 헛대답만 했을 뿐 건성이었다. 그렇게 엄마가 하룻밤을 지내고 오는 아침엔 내 옷은 늘 눈물과 콧물에 절여있었고 누우런 코딱지가 얼굴에 묻어나기 일쑤였다. 오빠의 공책은 가방에서 삐꼼 내밀다 말다 하다 나오지도 않은 채로 다시 책가방 속에 들어가버렸다. 오빠는 숙제를 하지 않은 지 아주 오래된 것임에 틀림없었다. 늘 오빠 발바닥은 시커멓고 종아리엔 빠알갛거나 까만 줄이 몇 개 서있었다. 그래도 오빠는 아랑곳하지 않고 엄마만 없으면 행복해했다. 오늘도 여기저기 장롱을 뒤져 무엇인가를 찾아냈는지 알 수 없는 콧노래를 부르며 나는 거들떠도 보지 않은 채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그러더니 다짐하듯 대문을 열어 얼굴을 내밀고는 "너 엄마한테 이르면 죽을 줄 알아" 하고 주먹을 불끈 들어보였다. 그 모습에 나는 메롱하며 감히 혀를 내밀 수 없었다. 30년이 훨씬 넘은 지금에도 그 소리와 말들이 기억나는 것은 내 어머니의 창에 까꿍을 준비하며 묵묵히 서있는 내 조카 덕이다. 아주 오래전의 집 그 집은 나와 함께 나이를 먹어왔고 그 창틀은 이미 철로를 이탈하기 쉽게 물러나 있었지만 엄마는 어찌어찌하여 지금도 창문을 잘 꿰맞춰 닫는다. 그리고 지금은 그 창틀이 반질반질하도록 동생의 아이들과 오빠의 아이들이 넘나들고 있다. 가끔 옷이 끼어 찢어지거나 엉덩이 살이 끼어 아프게 짖눌려지지만 세월만큼 물러난 그 창틀은 정겹기만 하다. 그리고 그 창 유리에 얼굴을 맞대이고 있는 조카는 어린 시절 돌아오지 않은 엄마를 기다리며 눈물 콧물 흘리며 소리내 울다가 지쳐 잠이 든 내 눈망울을 기억하게 한다.
알섬
2006-08-28 2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