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배(朴仁培) 묘역번호: 1-30 생 애: 1962.09.20 ~ 1980.05.21 성 별: 남 출 생 지: 광주 사망 원인: M-16 총상 사망 장소: 금남로 한일은행 부근 기 타: 자개공 유 족: 이금자(모) 공장에 간다던 인배가 시위에 참여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21일 금남로에서 목에 총을 맞고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한 것만은 분명했다. 어머니는 눈앞이 캄캄해져 왔다. 어느새 어스름이 내리고 있었지만 당장 달려가 봐야 했다. 인배의 삼촌과 집에서 나와 돌고개를 지날 쯤 정신없이 길을 재촉하는 어머니를 불러 세우는 목소리가 있었다... 계엄군이 광주에서 물러난 뒷날임에도 돌고개에서 만난 여학생은 어머니를 더 나아갈 수 없게 했다. 무턱대고 갈 수가 없었던 어머니와 삼촌은 집으로 그냥 돌아왔다. 그 밤에 다시 총성이 울렸다. 화정동 통합병원을 장악하고 시민군과 대치상태에 있던 계엄군이 쏘아대는 총소리인 듯싶었다. 새벽에 울리는 총소리에 심장이 오그라드는 듯했다. 죽어있다는 아들이 걱정되었다. 설사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아들의 시신이라도 찾아 놓아야 한다는 급한 마음에 어머니는 날도 채 밝기 전에 인배의 외삼촌을 깨워 집을 나섰다... 끔찍한 시신들에 정신을 놓아버렸던 어머니를 달래고 외삼촌 혼자서 인배를 찾아다닌다며 나섰다. 하지만 어머니도 집에만 있을 수는 없었다. 다시 정신을 잃는다 해도 인배의 시신을 확인해야 했다. 어느 병원에도 없던 인배는 24일 도청 지하실에서 발견되었다. 관 위에 “박이배”라고 씌어진 팻말이 있었고, 외삼촌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관 뚜껑을 열었다. 거기 피투성이가 되어 누워있는 조카가 있었다... 1981년 유족회에 가입한 이후 7년여 동안 어머니의 인생은 참으로 고달팠다. 광주의 비극의 원흉을 밝혀내기 위한 투쟁의 전선에는 늘 어머니가 서 있었고, 심약한 어머니는 전경들의 기세에 눌려 기절하기 일쑤였다. 전두환을 비롯한 광주학살의 책임자들이 광주에 올 때마다 형사들이 며칠 동안이고 집앞에서 감시를 했고, 강제로 납치되어 차에 실려 하루종일 끌려다니기도 했다. 국회의사당을 방문해 국회의장과 광주특위 위원장 면담을 요구하던 시위 중에는 깨진 도자기에 넘어져 바지가 찢겨 연행되어 가는 중에도 그것을 감추느라 끙끙댔던 웃지 못할 일들도 있었다... 그저 살아있는 목숨이라 하루하루 살아간다. 공공근로를 오가는 길목이 그대로 눈물이다. 여인으로 기구한 당신의 인생이 서럽고, 피지도 못한 자식을 허망하게 보낸 어머니로서의 삶이 한스러워서 혼자 걸어가는 길목마다에 눈물이 밴다. 곧 월급을 받아서 어머니 맛난 것 사드리겠다고 순진한 웃음을 흘리던 아들의 모습이 어머니의 눈물에 그대로 담겨 피어난다. 어머니의 눈에 꽃이 피어난다. 눈물꽃이 피어난다... 5․18 민중항쟁 증언록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中에서 http://www.raysoda.com/hyunreen
현린[玄潾]
2006-08-28 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