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호기심 항상 느끼는 거지만 아무리 척박한 환경이라도 인간이 터를 잡고 살고 있다. 지프 창문 밖으로 보이는 수많은 집들과 그 속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그냥 지나칠 때마다 아쉬운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낭가파르밧 입구에 있는 타레싱 마을을 1시간 여 앞두고 있을 무렵, 왼편 언덕에 집 한채가 보이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역시나 이러한 광경들을 그냥 스쳐 지나갈 수밖에 없음을 한탄하고 있는데 갑자기 ‘펑’하는 소리가 들리며 차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바퀴가 터진 것이다. 순간 내 얼굴에는 웃음이 번졌다. 바퀴를 갈아 끼우는 사이 저곳에 다녀올 수 있을 것이다. 카메라를 둘러메고 최대한 정중한 얼굴표정을 지으며 집으로 다가갔다. 집 앞에는 너른 마당이 있었는데 아저씨들, 여인네들, 아이들로 족히 열명은 넘는 듯 했다. 이들은 저들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나를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남자들이나 아이들의 눈빛은 확실히 호기심에 찬 눈빛이었고, 여인들의 눈빛은 날카로운 경계심으로 가득했다. 집 앞에 서서 이 집의 가장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더 가까이 가도 되냐는 시늉을 하자 안으로 들어오란다. 그 때 일이 벌어졌다. 여인네들은 황급히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주방으로 보이는 건물에 쏜살같이 들어갔고, 마당에 남은 건 나와 아저씨들 그리고 개구쟁이 남자아이들 뿐이었다. “차 한잔 하고 가지 그래?” 뒤 이어 우리 일행도 집안으로 들어왔다. 아마 이집 마당이 외국인들로 이렇게 시끄러워지긴 처음이었을 거다. 타이어 펑크가 나지 않는 이상 절대 들를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바퀴를 갈아 끼고 다시 출발할 때 보니 그길도 잘못 들어온 것이었다. 차가 나오길 기다리고, 또한 여인네들이 좀 나와주길 기다리는데 이들의 행동이 참 재밌었다. 아예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으면 문걸어 잠그고 안나올 것이지, 쉴새없이 주방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새로운 방문객에 대한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했다. 마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듯이 우리가 등을 돌리고 있으면 문을 열어 관찰하고 저들끼리 킥킥거리고 밀치고 하다가도, 고개를 확 돌려 쳐다보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문을 쾅 닫아버렸다. 이슬람국가에서는 그 집의 가장에게 허락을 받으면 여인들과 이야기도 하고 사진도 찍을 수 있다길래 아저씨에게 부탁을 하고 허락까지 받았지만 여인네들이 나오기 싫다는 건 가장도 어쩔 수 없었다. 보아하니 여인네들이 가장 관심있어 하는 건 바로 사진기였다. 찍고싶어 안달이 난 남자아이들을 우리가 찍어주고 화면을 보여주는 걸 너무 재미있어 했다. 저들도 자신의 예쁜모습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으리라. 한편 친구 한명이 집 오른쪽으로 난 골목길에서 아이들과 사진을 찍고 놀 때 난 남자들 틈에 숨어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주방문이 빼꼼히 열리고 몇 명이 튀어나와 내 존재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채 열심히 골목길을 구경하고 있었다. 나는 아저씨에게 눈치를 한번 준 다음 조심스레 카메라를 들어 몇 장 찍었다. 물론 그들은 잠시 한눈을 팔았을 뿐이지 이내 카메라를 알아차리고 기겁을 하며 다시 안으로 숨어버렸다. 곧이어 차가 나오고 우리는 서로 전혀 통하지 않는 대화를 열심히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우리가 마신 차는 안에 숨어서 우리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던 여인들이 끓여준 것이다. @ Astore, Pakistan
탕수
2006-08-27 0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