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금희(朴今喜) 묘역번호: 1-26 생 애: 1963.07.13 ~ 1980.05.21 성 별: 여 출 생 지: 광주 사망 원인: M-16 총상(복부) 사망 장소: 금남로 수미다실 앞 기 타: 학생(춘태여고 2학년) 유 족: 박병민(부) 어른들이 헌혈한 피가 많으니 돌아가라고 말려도 소용없었다. 얼마나 애가 탔으면 어린 그 아이가 헌혈을 하겠다고 혼자서 병원으로 향했을까? 열여덟 소녀의 애틋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금희는 그렇게 기독교병원으로 들어가 어린 눈으로 담기 힘든 부상자들을 목격하고 헌혈을 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을 다치게 했을까? 내 피로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구할 수 있겠지.’ 아파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작은 보탬이 됐다는 생각에 뿌듯해하며 병원을 나오는 금희의 얼굴은 맑았다... 광주 상공을 날며 시민군의 무장해제를 종용하던 헬기에서 금희를 향해 총알이 날아들었다. 광주에서 총성은 언제나 멈출 것인가. 금희는 계엄군이 헬기에서 쏜 총에 머리와 배를 맞고 비명소리도 없이 쓰러졌다. 자신이 헌혈한 것의 몇 배의 피를 흘리며 고꾸라진 채 일어나지 못했다. 그 여린 몸뚱이에 어쩌자고 그토록 많은 총을 쏜 것인가? 계엄군의 총알은 금희의 하복부를 좌측에서 우측으로 관통하였다. 뱃속에 있어야 할 장기들이 밖으로 밖으로 흘러내렸다. 어머니는 통곡했다... 26일, 상무관에서 유족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던 학생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생각에 집으로 돌아와 있자니 새벽 2시쯤 어둠을 가르는 총소리가 귀를 찢었다. 수많은 사람의 생명과 꿈을 앗아간 항쟁은 5월 27일 새벽 도청에서의 마지막 접전을 끝으로 신군부의 총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어느 날은 시에서 망월동 묘지를 파헤친다는 소문이 돌았다. 설마 하면서도 새벽녘 조용히 유족들과 함께 망월동에 갔다. 천인공노할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묘를 파 시신을 꺼내 짊어지는 짐승 같은 인간들이 보였다. 인기척에 놀라 달아나는 그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파헤쳐진 묘를 세어보니 20여 구. 눈이 뒤집히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들의 만행은 그렇게 그칠 줄 몰랐다... 금희의 이야기가 [금희의 오월]이라는 연극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이제는 이름도 잊혀져 간다. 보상금을 받았으니 이제는 그만 하라고 한다. 그만 목소리를 죽이고 잊고 살라고 한다. 그러나 어떻게 잊는단 말인가? 어떤 것도 사죄 받지 못했는데...... 어머니는 눈물만 흐른다. 5․18 민중항쟁 증언록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中에서 http://www.raysoda.com/hyunreen
현린[玄潾]
2006-08-19 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