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나무가 들려준 옛날 이야기
귀뚜라미가 울어대던 가을쯤이었나 보다. 저녁을 먹고 나면 이미 껌껌해져서 숨바꼭질을 해도 술레가 쉬이 찾기 어려울만큼 해는 짧아져 있었다. 친구 녀석이 '민수야 노올자'하고 나를 불러냈다. 딴에는 음흉한 미소를 하고는. 동네에서 말썽 좀 부린다는 녀석들은 다 나와 있었다. 영문도 모른채 무리에 끌려 따라갔던 곳이 바로 커다란 석류나무가 있는 그 집이었다. 눈치를 봐가며 작대기를 휘둘러봐도 닿지 않는 높이에 석류는 도도하게 매달려 있었다. 날쎈 녀석이 담을 타고 올라 석류 몇개를 따서 내려왔다. 인기척이 들렸는지 한 녀석이 냅다 뛴다. 우리도 질쎄라 심장이 터지도록 달려 가로등 하나 없는 골목길에 옹기종기 앉아 석류를 보고 군침을 흘렸다. 솜씨좋은 요리사가 생선을 손질하듯이 조심스레 보석같은 알맹이를 드러냈다. 생전 처음보는 열매에 꺼렸지만 용기를 내어 입에 문 알맹이는 참 달콤했다. 미인이 좋아하는 음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두근거리게 달콤했던... 마치 첫사랑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