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표(金容表)
묘역번호: 1-19
생 애: 1957.10.08 ~ 1980.05.21
성 별: 남
출 생 지: 담양
사망 원인: M-16 총상
사망 장소: 광주여고앞 도로상
기 타: 회사원(보경식품)
유 족: 양돈실(모)
“어이, 자네 아들이 무신 장갑차 같은 것을 타고 태극기를 막 흔들고 지나가더란 말이시. 봤는가?”
군에서 제대하고 쉬고 있는 막내아들이 매일 밖에 나가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 아들이 곤봉과 대검을 휘두르며 설치는 군인들을 뚫고 태극기를 흔들면서 돌아다닌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시청에서 가까운 계림동이 집이었던 터라, 군인들이 휩쓸고 지나간 곳은 금세 핏빛으로 변하고 마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들은 용표가, 그저 젊은 혈기에 집에만 있을 수 없어서 구경삼아 나다니는 정도라고 생각했다...
“아제, 아제, 나 좀 숨겨주소. 얼릉.”
그가 대인동 친척의 가게로 들어가자마자 바로 공수들이 들이닥쳤다..
“금방 여기로 개새끼 한 마리 들어왔지? 어딨어?”
다행히 군인들은 용표 씨를 찾지 못하고 돌아갔다. 용표 씨는 바로 개새끼가 되어버린 것이다. 정권에 눈이 멀었던 신군부 일당의 충실한 개들에게 광주 시민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차라리 개만도 못한 존재였다...
“아, 여기 노동청 앞인데 별일은 아닙니다. 잠깐 여기로 나와보세요.‘
노동청 앞에 갔을 때, 한 남자가 나서며 자신이 전화를 한 김종화라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군용 담요에 덮인 것을 가리키며 확인해보라고 했다. 김종화 씨는 군인들이 트럭에 싣고 가던 시신들 중에 한 구의 시체가 길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의 주머니를 뒤져 연락처를 찾아 그의 집에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담요를 들춰내자 아들이 누워있었다. 분명히 아들이었다. 당신 손으로 아침에 밥을 해 먹여 내보낸 막내아들이 누워있었다. 옷은 온통 피에 물들고, 온몸의 피가 목에 난 구멍으로 다 빠져 나와버린 것인지 핏기라고는 하나 없이 싸늘히 식어 있는 그 시신은 분명히 아들이었다...
5․18 민중항쟁 증언록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中에서 http://www.raysoda.com/hyunre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