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연주
건강에 관한 흥미로운 책을 읽다 밤을 세워 낮에 잠깐 조는데, 미나가 사진을 좀 찍어달라며 나와달란다. 아 쫌~ 피곤한데.
그녀가 그림에 몰두하는 모습을 언젠가는 멋지게 잡을 요량이었는데 적절한 때가 오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사이 '그리는 작업'을 하였는데 오늘 마친다고 늘어지는 내게 섭섭한 감정을 내비췄다. 그래서 다시 전화를 걸어 홍대 앞으로 나가기로 하였다. 오늘이 마무리 작업하는 날이라니깐.
며칠전에도 '작품이 나올거'라며 나를 끌고 나가려 했지만 피곤해서 거절했다. 그점이 못내 섭섭했을텐데 작업이 끝나면 그림 그리는 사진은 또 물건너갈 참이다. 그래 아이마냥 들떠 있는 그녀를 위해 사진을 찍어주자. 그냥 일반 외출 사진도 아닌 그녀의 전공인 '그림 그리는 작업'을 하는 사진이렸다. 그녀의 들뜬 기대감이 와닿는다. 나는 슬슬 출사를 위해 길을 나섰다.
작업장의 조건은 나쁘지도 좋지도 않았다. 광각렌즈는 생각만큼 이쁜 색감이 안나왔고, 표준 렌즈로 찍기에는 가게 면적이 작았을 뿐더러 정말 빌어먹게도 초점 맞추기가 힘들었다. 나는 모델에게 자세들을 취하게 하고 이리저리 분주하게 셔터를 눌렀다. 미리 말했지만 두세장 건지려고 이제 막 백만번의 셔터를 누른 참이다.
나는 최선의 사진이 나왔다고 생각지 않는다. 색감에 대한 단순한 내 견해는 어느정도 사진을 지나치게 하는 면이 있고, 인물사진에 뚜렷한 철학이 있는 것도 아니니 구도가 상투적으로 흐르기 일쑤다. 게다가 나는 사진이라는 매커니즘에 대해서도 초짜일뿐이다. 내가 온전히 갖춘건 그녀에 대한 애착이며 그녀의 나에 대한 믿음이다. 나의 욕심은 단지 그녀가 이쁘고 멋지게 나오길 바라는 것이다. 사진이 그녀의 마음에 들었으면 한다. 그림을 아름답게 연주하는 모습이 잘 나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