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에서 새벽까지 "황혼이야. 내가 가장 약한 시간은...그러니 지금은 무슨 말이라도 괜찮아" 쌀쌀맞기가 시베리아 고기압에 버금가는 '얼음 공주'가 뜻밖의 말을 내뱉었다. 촉촉한 목소리로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 그녀의 눈망울은 어느새 순정만화의 여주인공을 닮아있었다. 석양빛을 담은 그녀의 얼굴도 수줍게 붉어졌다. '꿀꺽~' 그가 삼킨 건 커피가 아니라 충격이었다. 도대체 내 앞에 있는 이 여자는 누구일까. 해질 무렵 30분 동안만 콩쥐로 변신한다는 팥쥐의 비밀을 들은 것처럼 정신이 아늑해졌다. 1년 전 그녀의 첫인상은 한마디로 수퍼우먼이었다. 탤런트 뺨치는 미모와 타고난 패션감각은 기본이고 부유한 가정환경에 학점 만점의 공인능력까지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수퍼우먼은 점점 터미네이터로 변해갔다. 그녀의 빈틈없는 재능은 마치 무능한 남자들을 박멸시키기 위해 타고난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그런 그녀가 편안할 리 없었다. 범상한 그는 비범한 그녀 앞에서 한없이 작아져갔다. 칭찬마저도 그녀의 입에서 나오면 빈정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역시 그녀는 그에게 몸에 맞지 않는 옷일까. 고민은 황혼의 그림자처럼 켜져갔다. 그는 오늘 정중한 이별의식을 준비했고 황혼의 카페를 찾았다. 그러나 그녀의 약한 모습을 절묘하게 발견한 그는 뜻밖의 순간에 운명을 직감했다. 그리고 새로운 이별사를 전달했다. "그럼... 우리 내일도 이 시간에 만날까?" 그 뒤로 그들은 주로 황혼에 만났고, 아니 황혼'부터' 만났다. 그리고 얼마 뒤 황혼은 밤을 지나 새벽까지 이어졌다. 어느새 예쁜 딸아이도 생긴 두 사람은 때때로 아이와 함께 노을을 감상하는 습관이 생겼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매력남 매력녀들은 의외로 약점이 많다. 그리고 그것을 드러내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강한 사람들이다. 오히려 약점을 감추고 모든 것을 완벽하게 보여주려는 이 땅의 모든 수퍼맨과 수퍼우먼들이 약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수퍼우먼은 강하지만 외롭다. 수퍼맨도 마찬가지다. 사실 약점 없는 사람이 어디있을까. 다들 교묘하게 자신의 약점을 감추고 있을 뿐. 수퍼맨도 자신이 태어난 행성의 돌 '크립토나이트' 앞에서는 힘을 못쓴다. 사랑은 약점을 감추기 보다 드러낼 때 찾아온다. 그녀도 사실 원래부터 황혼을 좋아했던 건 아니다. 이별을 직감한 순간 마음이 약해졌고 황혼을 핑계삼아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낸 것 뿐이다. 그녀가 버린 수퍼우먼의 망토는 마법의 양탄자가 되어 그의 마음을 돌렸다. 그러니 어떤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만이라도 어깨에 들어간 힘을 빼는 것이... 메이드인 훈 www.Madein-Photo.com Tip> 사진을 찍은 곳은 양화대교 옆에 있는 선유도의 구름다리죠. 뭔 놈의 태양이 저리도 크게 잡히냐구요? 태양 앞에 실루엣으로 비춰질 사람들과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커집답니다. 이때는 300여m 정도 멀리 떨어진 사람들을 400mm 망원렌즈로 카메라에 담았던 것 같네요.
메이드인-훈
2006-07-20 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