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우산
한 남자가 있다.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
소나기가 내리는 어느 오후, 두 사람은 함께 지하철 출구를 나선다.
남자의 손에 들린 건 한개의 우산 뿐. 여자의 빈손을 확인한 그는 가까운 노점상으로 황급히 달려가 우산 한개를 사온다.
남자는 감탄의 눈빛을 기대하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여자에게 우산을 내민다. 공주의 걸음을 가로막는 웅덩이 위에 망토를 벗어던진 기사의 모습처럼...
여자는 잠시 망설이다 우산을 받아들고 하늘을 향해 펼친다.
결국...
두 사람은 각자의 우산을 쓰고 빗길을 걷는다.
.
.
.
여자의 뒷모습은 말이 없다. 한숨은 빗소리에 묻힌다. 다만 여자의 핸드백 속에 숨겨져있던 또다른 접이 우산 하나가 삐죽 고개를 내민다.
남자는 왜 몰랐을까. 여자의 마음을...
지나친 배려와 친절이 오히려 상대를 불편하게 만드는 때가 있다. 이런 경우가 꼭 그렇다.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 유턴하는 어리버리한 녀석 같으니라구...
그렇다면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남자의 죄라고는 여자를 향해 끝도 없이 샘솟는 친절 뿐인데....
사랑은...정말 어렵다.
이렇게 알듯 모를듯 잡힐듯 말듯 알쏭달쏭한 사랑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
.
.
쉬운 질문은 아니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쉽게 알 수 있다. 인류는 사랑에 대해서 만큼은 좀처럼 진화되지 않는다는 것. 몇천, 몇만년이 지나도 여전히 사랑에 굶주리고 아파하고 상처받는 게 우리들의 모습이다.
그리고 여전히 많은 남자들은 그들의 연인을 사랑하는 방법을 쉽게 깨우치지 못한다.
나는 어떨까.
글쎄...
나의 경우는 다행스럽게도 일찍부터 깨달음을 얻어 남자의 껍데기를 벗고 유부남으로 '진화'할 수 있었다. 풋내기 총각들과는 차원이 다른 신인류의 고귀한 몸이란 말씀이다. 흐흐흐...
정말일까?
내가 이토록 자신감이 넘칠 정도로 사랑과 여자에 대해 해박했던가.
.
.
.
음...미안하다. 오늘의 어리버리 러브스토리는 바로 내 얘기다.
그러고보면 나이를 먹을 수록 진화보다는 퇴화 쪽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다. 더우기 나의 마님께서도 나같은 품종이라면 머지않아 멸종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계신 듯 하다. 제길...TT;
메이드인 훈 www.Madein-Photo.com
Tip> 자동차 앞유리에 맺힌 빗방울에 카메라를 겨눴습니다. 자동차의 지붕을 때리는 빗방울의 비트소리를 들으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테이크 아웃 커피를 한모금 삼키는 맛이란...장마철의 로망이라고나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