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열차
기차가 커브를 돌 때
몇십톤의 차체가 사뿐히 안쪽으로 기울고
감속을 위해 덜컹거리고
잠시 후 직선구간을 만나 다시 가속한다
기관차 쪽에 가까운 객실에 타게 되면
그 느낌이 더욱 확실하게 전해진다
나는 그 느낌때문에
낡은 새마을호가 좋다
종종 KTX를 탈 때, 열차가 단 몇 분 이라도 연착되면
나는 뭔가 사기를 당한 느낌이다
하지만 낡은 새마을호에게 나는 관대하다
곱지만은 않은 길을 읽어가며 최선을 다해 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힘겨워하는듯한 엔진음으로부터,
격렬하게 흔들리는 차체로부터
전해지기 때문이다.
이 90년대의 특급열차가 21세기의 오늘도
내일도, 조금은 더
달렸으면 좋겠다
전 구간에 고압선이 깔려서
언젠가 모든 디젤 기관차가 잠을 자게 될 때에도
한대쯤은 가쁜 숨을 내쉬며
우리가 힘들었던 시절을 함께해왔음을,
최선을 다하는 것이 무엇이었던가를
자랑스럽게 추억하도록 말이다.
pentax ist ds
smc-da 14mm f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