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남용(奇南龍)
묘역번호: 1-11
생 애: 1954.04.27 ~ 1980.05.21
성 별: 남
출 생 지: 광주
사망원인: 좌흉부 피하출혈, 안면부 타박상
사망장소: 전남 도청 앞
기 타: 자영업(피복상)
유 족: 기충호(부)
1980년 1월, 기남용은 결혼했다. 이제 막 신혼의 단꿈을 꾸는 새신랑은 일찍 얻은 아들의 초롱한 눈망울을 보며 아내와 행복하고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낮에는 생업에 매달렸지만 밤에는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도 어두운 이 땅에 환한 민주화의 등이 밝혀지기를 갈구하는 젊은이 중 하나였다. 비상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되고, 계엄군이 광주에 입성하여 지독한 살상을 퍼붓기 시작한 5월 18일 이후, 그는 일보다는 거리를 뛰어다닌 시간이 더 많았다.
아내의 부모님, 이모님 모두 그에게 시위에 나가지 말라고 당부하자, 그는 20일,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장성으로 피난길에 올랐다. 급하게 짐을 꾸려 나서다 보니 아이의 기저귀 가방을 빠뜨렸다. 발길을 되돌려 집으로 향하던 그는 친구들과 다시 얼굴을 맞닥뜨리고 시위차량에 올라타고 말았다...
5월 21일, 남용이 탄 트럭이 도청을 향해 달려갈 때, 지축을 흔드는 총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놀란 차가 급정차를 하면서, 발목에 총상을 입은 조수석의 남용을 거리에 내동댕이치고 말았다. 달려든 계엄군들은 차안의 사람들을 끌어내 대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쓰러져 있던 남용의 가슴에도 대검을 꽂았다. 진압봉은 남용의 온몸을 쓸고 지나갔다. 인근에 있던 사람들이 남용을 인제병원으로 옮겼고, 그는 다시 전대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그는 숨을 거두었다...
“전두환, 노태우가 자식을 잃어봤어? 지기들이 자식이 죽은 부모 심정을 알기나 해? 그놈들도 그것이 얼매나 사람 환장허게 맹그는 것인지 알아야 써. 우리가, 내가 그동안 뭔 마음으로 세상을 살았는지, 지기들은 죽어도 모를 것이여. 백담사서 편안히 쉬고 나오고, 징역살이 그것 쪼끔 해놓고, 낯바닥 들고 다녀? 그것도 징역살이 한 것이여? 그것도 징역이여? 우리 가슴에 이렇게 못을 박고, 평생 자식 앞세운 죄 많은 부모로 살아가게 맹글어 놓고, 지기들은 도둑질해 놓은 돈으로 인자 편허게 잘 묵고 잘 살라고? 내가 그놈들 이름만 들어도 이가 갈리고, 분해서 참을 수가 없당게. 갈갈이 찢어서 도청 분수대에 매달아 놔도 분이 안 풀릴 것이여. 근디, 시방 그놈들은, 그놈들은 암시랑토 않게 두 발 쫙 뻗고 잔단 말이여. 시상에 하늘이 이렇게 불공평헌가? 아이고…….”
5․18 민중항쟁 증언록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中에서 http://www.raysoda.com/hyunre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