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복원(姜福遠)
묘역번호: 1-09
생 애: 1959.09.13 ~ 1980.05.21
성 별: 남
출 생 지: 전남 나주
사망원인: M-16 총상
사망장소: 송암 동남선연탄공장 앞 국도상
기 타: 운전사(대한통운)
유 족: 강유성(부)
1980년 5월 21일, 석가탄신일에 어머니는 동네 계모임을 하고 돌아와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을 찾던 둘째 아들 복원은 대한통운에 다니면서 운전도 하고 하역도 했다. 큰아들은 스무 살 때부터 이유 없이 시름시름 앓아누워 집에 있었다. 그날 퇴근해서 돌아온 복원은 나갔다 오겠다고 했다.
“아야, 가기는 어딜 가냐? 시방 여섯 시다. 밥 묵자.”
“아니여. 시방 광주 사람들이 다 죽어간다네. 고속버스가 광주로 다시 들어간당게는 내가 운전을 해줘야 할 것 같어. 엄마, 걱정허지 말고 있으소.”
“긍게 말이다. 근디 그 위험한 디를 니가 뭣헐라고 가냔 말이냐?”
어미니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고 복원은 나주 성북동 집을 나섰다. 큰길에는 시민군과 무기가 실린 고속버스가 기다리고 있었고, 복원은 그 중 한 대의 운전석에 올라탔다...
밤새 총소리가 나고 사람들이 죽었다는 송암동에 도착하자 길가에 쓰러진 몇 구의 시체가 보였다. 머리에서는 밤새 날았다는 헬기가 아직도 떠다니고 있었다. 송암동 남선연탄 공장 앞에서 군인들이 가로막았다. 길옆으로 쓰러져 있는 버스들도 보였다...
어머니는 무서운 줄도 모르고 엎어진 시체를 제쳤다. 옷만 달랐을 뿐, 그 얼굴은 분명히 복원이었다. 버스를 운전해야 한다더니 정말로 고속버스를 운전하고 가다가 매복해 있던 군인들의 총에 맞아 쓰러진 것이다. 운전자가 총에 맞아 쓰러지고 차는 뒤집어지고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도 목숨을 잃었다. 밤새 시끄럽던 헬기 소리는 군인들이 시체를 실어 나르는 소리였던 것이다...
동생의 죽음에 가슴 아파하며 점점 병세가 심해지던 큰아들이 급기야 동생의 뒤를 따르고 말았다. 아들 둘에, 딸 셋이던 자식들 중 두 아들이 맘껏 뜻을 펴보지도 못하고, 장가도 가지 못하고 부모를 앞서 떠나버렸다. 새벽에 짓던 한 그릇의 밥이 두 그릇으로 늘어나고 어머니의 눈물은 두 배, 세 배가 되어버렸다...
5․18 민중항쟁 증언록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中에서 http://www.raysoda.com/hyunre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