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멘타인
경주에서 열린 뭔 대회에 가서..
동해의 바다를 잠시 볼 기회가 있었는데...
마침 바닷가에 이런 모습이 연출되고 있었다. 문득 머리 속에서,
"넓고 넓은 바닷가에..."라는 노래 가사가 떠올랐다.
그래서 찾아 봤다. 누구나 알고 있는 노래지만,
그 사연을 보니 몰랐던 것이기도 하고...
아래의 내용은 퍼 온 것... 상식으로 한번쯤 읽어 두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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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Clementein은
미국 서부개척시대의 "포티-나이너(forty-niner)"들이 슬픔을 달래기 위해서 불렀던 노래였습니다.
노래에 나오는 "포티나이너"란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황금을 캐기위해 캘리포니아의 광산으로 몰려든 사람들을 말하지요.
1840년대 후반, 캘리포니아의 어느 제재소에서 일하던 목수에 의하여
시작된 골드러시는 당시 미국 사회를 열병으로 끓어 오르게 하였습니다.
각국 각지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황금을 찾아서 북부 아메리카의 강변으로 몰려들었지요.
모두가 직장을 팽개치고 노다지를 캐기위해 광산으로 향했습니다.
그중에는 공무원도 있었고 신문기자도 있었으며, 군인, 의사, 판사 등 상류층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때문에 공장과 사무실은 휴업을 하고, 선원들이 모조리 빠져나가는 바람에
선원들을 구하지 못해 선주들은배들마저 운항을 중지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미국인뿐만아니라 유럽, 남미, 중국 등 외국에서도 수십만의 사람들이
캘리포니아로 몰려들었습니다.
이들은 광부가 되어 1848년부터 1858년까지 약 10년 동안 5억5천만 달러어치의 금을
캘리포니아의 광산에서 캐냈습니다.
물론 당시로서는 아주 큰 돈이었지만 "포티나이너"들 모두가 거부의 꿈을 이룬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부분의 "포티나이너"들은 열악한 조건에서 가혹한 노동과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렸습니다.
거친 노동과 부실한 식사로 인한 영양실조와 인디언의 습격으로 죽어가는 사람도 수없이 많았습니다.
힘들게 일을하고 집에 들어가면숭숭 구멍뚫린 지붕에선 비가 새고편안히 쉬어야 할 방안에는
독사가 또아리를 틀고 있기가 일쑤였고, 옷은 제대로 입을수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자신들이 피땀 흘려 캐낸 황금이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등 돈많은
자본가들의 배를 불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허탈감에 사로잡힌 "포티나이너"들 사이에서는
자조적인 노랫가락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동굴과 계곡에서 금맥을 찾는 한 포티나이너에겐 클레멘타인이라는 딸이 있었지.....
이렇게 시작하는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이라는 노래는
"포티나이너"들의 슬픔과 눈물이 담긴 상실의 노래였던 것입니다.
이 노래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3.1운동 직후부터라고 합니다.
소설가 박태원씨에 의해 우리의 정서에 맞게 가사가 바뀐 이 애조 띤 노래는
당시 나라 잃은 슬픔에 절망하고 있던 우리 민중 사이에서 널리 애창되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