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금-김춘수 그는 그리움에 산다 그리움은 익어서 스스로 견디기 어려운 빛깔이 되고 향기가 된다 그리움은 마침내 스스로의 무게로 떨어져 온다 떨어져 와서 우리들 손바닥에 눈부신 축제의 비할 바 없이 그윽한 여운을 새긴다 이미 가 버린 그날과 아직 오지 않은 그날에 머문 이 아쉬운 자리에는 시시각각의 그의 충실만이 익어간다 보라 높고 맑은 곳에서 가을이 그에게 한결같은 애무의 눈짓을 보낸다 놓칠 듯 놓칠 듯 숨가쁘게 그의 꽃다운 미소를 따라가며는 세월도 알 수 없는 거기 푸르게만 고인 깊고 넓은 감정의 바다가 있다 우리들 두 눈에 그득히 물결치는 시작도 끝도 없는 바다가 있다 내 동생이라 말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우리 부모님의 소생.
나무2311
2003-09-19 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