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형
묘역번호: 1-05
생 애: 1962.05.05 ~ 1980.05.20
성 별: 남
출 생 지: 광주
사망원인: 총상
사망장소: 계림동 광주고등학교 앞
기 타: 고아
유 족: 오정열(원장)
세상은 재형이를 버렸지만, 재형이는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그 아이에게는 아직 힘든 세상에 대한 사랑이 남아 있었다. 그는 성실하고 남에게 베풀 줄 알아서, 재활원의 친구들이나 동생들을 제 동기간처럼 살펴주었다. 그래서 그에게는 안팎으로 친구들이 많았다. 재활원에서 조금 자란 아이들은 구두닦이를 하며 제 용돈을 벌기도 했는데, 재형이도 구두닦이를 시작했다. 구두닦이 통을 들고 거리에 나가 지나는 시민들의 구두를 닦아주고 푼푼이 받은 돈이 재형이가 가질 수 있는 돈의 전부였다. 그 적은 돈은 제 용돈이 되고 재활원 운영에도 보탬이 되었다...
1980년 5월 광주의 비극은 재형에게도 왔다. 구두를 닦으면서 시내를 돌아다니던 재형이는 계엄군의 만행을 똑똑히 보았다. 수많은 시민들이 무참하게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모습에 재형이는 그저 구경꾼일 수가 없었다. 재활원의 원장인 오종열 씨가 아이들을 단속하면서 나가지 못하게 하였지만 아이들은 삼삼오오 어울려 시내를 돌아다녔다. 시위 현장 곳곳에 재형이도 서 있었다...
20일 경 시내로 아이들이 또 나갔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은 모두 돌아왔는데 밤이 늦어도 재형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자정이 다 되어 가는 시간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오 원장의 아내가 전화를 받았다. 누구인지 밝히지 않은 어떤 사람이 재형이가 광주고등학교 앞에서 총을 맞았다고 전했다...
5․18 민중항쟁 증언록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中에서 http://www.raysoda.com/hyunre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