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태(金仁泰)
묘역번호: 1-04
생 애: 1932.10.28 ~ 1980.05.20
성 별: 남
출 생 지: 전남 해남
사망원인: 타박사
사망장소: 광주교도소 부근
기 타: 농업
유 족: 심복례(처)
그해 5월, 그네는 해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다. 광주와의 인연이라면 큰아들 중현이가 그곳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것밖에는 없었다. 그해 2월 중현은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나 돈이 없어서 하숙비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농사철이 다가와 남편은 돈을 들고 광주를 올라갈 짬이 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더는 하숙비를 밀려 둘 수 없어서 그 바쁜 농사철에 남편은 광주로 향했다. 하숙비를 주고 금방 내려오겠다는 약조를 하고...
그는 학생도 아니고 시위대도 아니었다. 광주시민도 아니었다. 어쩌면 그는 그런 사실을 수도 없이 되뇌고 울부짖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을 죽이고도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던 살인마들의 귀에 그런 말이 들렸을 리 없다. 목숨을 잃을 만큼 매를 맞았다면 도대체 얼마나 사람을 팼던 것일까...
시뻘건 강에 사람이 둥둥 떠 있는 것 같았다. 시신은 형체도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부어 있었고, 머리 여기저기가 깨져 피가 흘러 넘쳤고, 관 속은 그 피가 흥건히 고여 있었다. 1997년 신묘역으로 이장하면서 유골을 끄집어내었을 때, 가족들은 김인태 씨가 극심한 구타로 인해 두개골 압박골절로 사망한 것을 알았다. 유골의 상태가 그 정도였으니 시신은 말해 무엇을 할까...
5․18 민중항쟁 증언록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中에서 http://www.raysoda.com/hyunre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