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님은 떠났습니다...
"손씨!...여는 터가 좋아 잘될끼라...."
눈물을 글썽이며 영감님이 말했습니다...
낮술을 한잔 걸친 모양입니다....
이사짐 다 꾸리고 기다리고 있다는 전화를 받고 준비해 둔 돈을 들고..
팔공산 중턱 서촌이라 불리는 동네로 차를 몰고 올랐습니다..
큰 짐은 이미 보낸듯 하고 일부 남은 짐만 1톤 트럭에 실고
집주인 영감님이 동네분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경매로 산 집을 비우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다 비웠따..손씨 함 둘러보소...."
찐득함을 담고 나에게 권합니다....
"네...잘 치우셨네요.."
"......"
"영감님 죄송합니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머....팔자가 그래서 그런 기지...."
"이사는 어디로 가십니까?......."
"......"
대답을 안하고 먼산만 바라보는 영감님..
4대째 살아왔던 집을 남에게 넘겨 준다는 것이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이미 칠순을 넘기신 노인네의 회한이 손에 잡힐듯 합니다....
그러니까
작년 9월쯤 법원 경매 물건으로 나온 집이었습니다...
그때 처음 만나 본 영감님의 사정때문에 망설이다가 경매에 나섰지만
운이 없었던지...
경락을 받지 못했더랬습니다...
그후 몇달이 지난 후
다시 보니 재경매로 나와 았었습니다..
아마 어떤 사정이 있었겠거니 생각하고
이것저것 다시 조사하고 권리분석해서 경매에 임했습니다...
다행히 경락이 되었습니다...
번거로운 도시의 생활보다는 공기좋은 곳에서의 평화로운 생활을
염원해 오던 저한테는 아주 좋은 기회였지요....
법원의 일정대로 돈을 치루고 집을 비워 달라고 요구했지만...
사정이 딱했습니다...
하나있는 아들이 사업을 한답시고 담보로 대출을 낸 것이 사업의 실패로
경매로까지 오게 된 모양이었습니다...
그 아들은 빗쟁이들을 피해 어딘가 숨어 산다고 했습니다....
꼭 저를 보는 듯 했습니다...
그후 영감님의 동생이 나서서 이사일정을 저하고 의논하게 되었고...
오늘에사 이사를 하게 된 것입니다..
아마 아랫동네에 남의 과수원 농사 짓는 것도 있고 해서..
아래 지묘동쯤이나 가려니 했지만...
차를 보낸 후 동네분들에게 물어보니 아들이 숨어사는 경기도 포천으로
갔다고 헸습니다...
그래도 자식곁으로 갔다고 하니 한결 마음은 가벼웠습니다...
빈 집을 둘러 보았습니다...
자랑스럽게 현관문 입구에 붙어있던 <6.25 참전용사의 집> 팻말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마 가지고 가셨겠지요....
갑자기 담배가 당겨옵니다...
주기로 했던 이사비에서 전기세니 수도세니 해서 5만원
댕겅 잘라 먹은 내 속아지가 못마땅해
무안한 속이 뒤집어 집니다...
"손씨!...여는 터가 좋아 잘될끼라....
들어보니 철학하는 모양인데....잘 될끼라....
열심히 사소...."
작년부터 길러서 뒤로 묶은 내머릴 보고 철학하는 줄 알았나 봅니다..
영감님이 내손을 잡고 마지막 했던 말씀입니다....
사시는 날까지 건강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