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에 홀리다 (인도 홀리축제특집 #1) 색의 축제 홀리. 우리로 치면 음력설에 해당하는 그날이었다. 사실 네팔을 도망치듯 빠져나와 바라나시로 직행한 이유도 바로 홀리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홀리에 대해 뭐 대단한 지식이나 감상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나의 스승 스티브 맥커리의 사진 한장이 나를, 이날, 이곳으로 이끌었을 뿐. 온몸에 붉은 물감을 뒤집어 쓴 채 새하얀 눈알을 번뜩이는 사내아이의 사진. 나도 한번 이런 사진을 담아보자 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바라나시를 방문한 여행객들에게는 주의경고가 단단히 떨어진 상태. '웬만하면 홀리 당일 오전 중에는 숙소 밖으로 나가지 말 것' 따라서 모든 게스트하우스는 아예 대문을 굳게 잠궈버렸다. 하지만 난 이미 그 경고따위는 가뿐히, 아니 큰맘 먹고 무시하기로 결정을 내린 상태. 아침 일찍부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뭔가 심한 장난을 치느라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 시계를 보니 9시, 예상대로라면 그 말로만 듣던 색의 축제가 한창일 시각이다. 우선 팬티바람으로 베란다에 나가 돌아가는 상황을 먼저 살폈다. 결과는 내 상상보다 더욱 재미나고 어찌보면 심각해 보였다. 한동안 맑던 날씨는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보슬비를 뿌려대고, 아이들은 옥상, 발코니에 올라 앉아 밑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물감 세례를 퍼붓고 있었다. 길거리는 각종 쓰레기들, 똥들, 빗물, 그리고 화려한 형형색색의 물감들이 온통 뒤섞여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고, 그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염색장에 사는 생쥐 꼴이었다. '지금 밖으로 나가면 나도 한마리의 생쥐가 될 것이 뻔한데...' 방으로 들어오면서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번뜩 스친 생각. '좀더 치열하고 모험적인 여행을 할 것' 당장 검은색 티셔츠에 수영복 바지, 카메라를 보호하기 위한 잠바를 걸치고 숙소를 나섰다. 물론 잠긴 대문열쇠를 따고 말이다. 길거리에 들어서자마자 인도 사람들이 '그래 너 한번 잘 나왔다'는 얼굴로 쳐다본다. 이미 여기저기에서는 방향을 가늠하기 힘든 물감풍선들이 날라와 내 따귀를 때리거나 아니면 상당량의 물감이 통째로 떨어져 뒷통수를 내리친다. '내 몸은 스머프가 되도 좋다. 카메라만 살려다오.' 나의 이런 소망은 꼬마들의 인정머리없는 물감사격에 여지없이 짓밟히고 말았다. 그래도 난 좋았다. 아니 너무 신났다. 물감이 잔뜩 절은 카메라를 셔츠로 쉴새없이 닦아가며 이 유별나고 신명나는 축제장면을 열심히 담았다. 찍은 사진이 어떻게 나왔는 지 LCD로 확인할 겨를도 없었다. 그랬다가는 가뜩이나 사격솜씨 좋은 아이들 앞에서 고정된 표적이 되기 쉽상이었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그리고 끊임없이 물감을 뒤집어 쓰며 골목골목 마구 헤집고 다녔다.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온몸은 단풍 무지개가 된 채 골목을 활보하는 동양청년의 모습이 인도인들에겐 무척 재미가 있었던 지 만나는 사람마다 유쾌한 웃음을 터뜨려줬다. 사실 고작 일주일 밖에 안되는 기간 동안 얼마나 인도인들에게 실망하고 그들에게 화를 내고 짜증도 많이 냈었던가. 그런 모든 아쉬움들이 아름다운 물감들에 뒤덮여 즐거운 기억으로 바뀐 지 오래였다. 내게 아낌없는 물감풍선을 던져준 아이들, 너무 얼굴이 깨끗하다며 검은 손바닥을 볼에 비벼준 아저씨, 초록색 분말가루를 온몸에 뿌려준 아이들, 제발 그것만은 하지 말아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단히 무시하고 아이 두명은 들어가서 목욕할 수 있을 것 같은 대야속 물감을 쏟아준 아이들, 내 모습을 보고 축제가 즐겁지 않냐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어준 경찰 아저씨들, 마지막으로 "해피 홀리!"라며 악수를 청해줬던 아이들에게 모두 감사하다고 전해주고 싶다. 그리고 그동안 너무 짜증내서 미안하다고도 말이다. 그래 난 어디까지나 그들의 생활 방해꾼에 불과한 여행객일 뿐이다 @ Varanasi, India
탕수
2006-06-08 05: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