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모유감(孟母遺感)
송북 오일장, 일린
맹모유감(孟母遺感)
맹모들이 넘쳐난다.
자식바라지를 위해서라면 삼천(三遷)은 물론이고 삼십천이라도 해서
원조 맹모를 야코죽일 장한 어머니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흔히 맹모삼천지교를 이리들 알고 있는갑다.
맹모가 가(軻, 맹자 이름)를 데리고 공동묘지 근처에 살았는데
이눔아가 늘상 하는 짓이 상여 놀이 아닌가베.
"앗 뜨거라! 이거이 안 되겠구마"해서 옮긴 곳이 장거리.
그런데 이번에는 "떨이요 떨이,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니여"하믄서
장사치 흉내로 세월을 쥑이는기라.
그래설라므네 열이 뻗쳐 갖고 또다시 옮긴 곳이 서당 옆댕이.
그제서야 철읎던 이눔아가 사람꼴이 백히기 시작하더란 말이시.
자녀 교육에 있어 환경의 영향을 설명하는데
전가의 보배처럼 사용되어 온 맹모삼천지교.
허나 골빈당 자투리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아마도 맹모의 삼천은 현모의 치밀한 계산에 의한 결과였을 게다.
죽음만큼 사람의 생각을 깊게 만드는 것이 어디 있으랴.
소년 공구(孔丘)도 빈한했던 유년 시절, 호상소(護喪所) 알바로 삶을 꾸리며 예를 배우지 않았던가.
맹가(孟軻) 또한 공동묘지에 실려오는 수많은 죽음의 행렬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새겼으리라.
어린 자식에게 죽음이라는 인간 본질의 화두를 던진 어미는
이제 삶의 문제를 천착케 하기 위해 저자로 내려선다.
온갖 무뢰배들이 넘쳐나는 시정에서의 부대낌은 어린 맹가에게
뜨거운 현실 인식을 심어주었고 이것이 훗날 맹자를
전국시대의 개혁가로 키운 자양이었을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무릇 모든 학문은 현실과 부단히 교호하고 때로 길항하며 성숙의 지평을 향하는 것이거늘,
맹모삼천지교를 오독한 우리 시대의 맹모들은.....
같잖은 사진 한 장 놓고 말이 많았다.
언젠가 알타반 님의 따~꼼했던 지적처럼
이놈의 관념과잉은 죽어 땅속에 묻히고 나서야 없어질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