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철(金敬喆) 묘역번호: 1-01 생 애: 1956.08.15 ~ 1980.05.19 성 별: 남 출 생 지: 광주 사망 원인: 타박사 사망 장소: 서동 구 전남양조장 공터 기 타: 양화공 유 족: 임근단(모) 광주의 첫 희생자는 시위대도 학생도 아니었다. 장애인 김경철 씨였다. 들을 수 없고 말도 잘 하지 못하는 그의 죽음은 소요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내려왔다는 계엄군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말해주는 것이었다... 경철 씨는 딸 혜정이의 백일잔치를 치른 며칠 뒤인 5월 18일에 가족 모임을 가졌다. 그리고 집에 왔던 처남이 영암에 간다기에 데려다 주러 나갔다가 친구들과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다. 금남로에서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공수부대원들의 눈에 띄었다. 그들은 무조건 달려들어 몽둥이를 내리쳤다. 친구들은 도망쳤지만, 경철 씨는 들리지 않는 탓에 낌새를 몰랐고 공수부대원들에 둘러싸이고 말았다... 말할 수 없으니 자신이 왜 맞아야 하는지 물을 수도 없었다. 학생도 아니고 데모도 하지 않았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 들을 수 없으니 그들이 요구하는 지시를 따를 수도 없었다. 가지고 다니던 신분증을 보여주며 자신은 청각장애인이라고 해도 돌아오는 것은 매뿐이었다. 그는 나동그라지면서도 빌었다. 그들의 다리를 붙잡고 애원했다. 애원하며 맞았다. 대답하지 않는다고 때리고, 벙어리 흉내를 내며 장난한다고 후려치고, 번호를 붙이지 않는다고 군홧발로 짓이겼다... 뒤에 광주지방검찰청과 군 당국이 합동으로 작성한 김경철 씨 사망자 검시서에는 후두부 찰과상 및 열상, 놔안상 검부열사, 우측 상지전박부 타박상, 좌견갑부 관절부 타박상, 긴경골부․둔부 및 대퇴부 타박상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랬다. 뒤통수가 깨지고, 눈이 터지고, 팔과 어깨가 부서졌고, 엉덩이와 허벅지가 으깨졌다... 경철 씨의 딸 혜정이는 할머니를 엄마라고 부르며 자랐다. 어린 손녀가 엄마를 찾으며 보챌 때는 아들 생각이 더욱 간절했다. 할머니에게 손녀는 아픔 그 자체였다. 어린 손녀를 끌어안고 많이도 울었다. 남편이 떠났을 때도 아들 보낸 서러움만큼 크지는 않았다... “경철아, 미안하구나. 에미가 못난 탓에 네 귀를 어둡게 했는디, 그것 때문에 네가 죽었구나. 미안하구나. 그 죄값 하느라 이 에미가 너 없이 외롭게 수십 년을 살았단다. 그래도 네 죽음 헛되지 않게 이 에미가 열심히 살았다. 글고 우리 혜정이 너를 보듯이 키움서 살았다. 경철아 이제는 에미를 용서해다오.” 5․18 민중항쟁 증언록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中에서 http://www.raysoda.com/hyunreen
현린[玄潾]
2006-06-01 0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