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bination
캄캄한 방 안...
침대에 누워 조심스레 핸드폰 폴더를 열어 봅니다.
밝은 LCD창과 숫자 키패드에서 발산되는 색광(色光)에 의해
어둠에 묻혀 있던 방 안의 윤곽이 살며시 드러납니다.
더불어 내 기억 속 가장 어두운 끝자락으로 힘겹게 밀쳐냈던 기억의 파편들 위에도
희미한 빛 줄기가 드리워 집니다.
숫자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조합의 수는 무한(無限)합니다.
이 안에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고,
평생을 같이 할 친구들이 있고,
잠시 스쳐가는 인연들이 있고,
다시 마주치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 가보지도 못한 낯선 땅에서 살고 있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이들과도 몇번의 '누름'으로
잠시나마 짧은 인연이 연결되고 끊어 지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숫자들 안에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통로들이 실타래처럼 엉켜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듯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통로들 속에는
당신에게로 가는 통로도 있겠지요.
왜 유독 당신을 향해 뻗은 통로로 들어서는 입구가
나의 눈에는 그리도 작고 아련하게만 보이는 것인지...
걸을 수 있는 용기가 없어서 일까요?
아니면 끝나지 않을 통로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까요?
다시 핸드폰 폴더를 열어 봅니다.
주변이 밝아지고, 내 기억 아득하기만 했던 그곳도 자연스레 밝아 집니다.
하지만 이내 다시 방 안은 어두워지고, 내 머리 속 또한 방 안과 같이 캄캄해 집니다.
당신은 모르겠지요.
울리지 않을 매번 같은 번호들의 조합을 수도 없이 눌렀을
나의 의미없는 손짓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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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인 집 - 내 방 [February 8, 2005]
▶ Canon EOS 300D DIGITAL + Canon EF-S 18-55mm f/3.5-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