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앞 골목길
이사온 이태원엔 이슬란 성전 이외에도 한국 점집이 많다.
재밌는 건 그들이 체를 내려 준다는 것이다.
옛날엔 종교 지도자가 정치 지도자고 동시에 의사였다는 얘기를 새삼 생각나게 한다.
아마 예수님도 병이나 장애를 낫게 해주려고 맘먹었다기 보다는 그가 신의 아들이므로 당연히 의사여야 한다는
밀려드는 군중의 요구에 부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정치범으로 죽었다.
가까이는 근대화를 동경하던 일본에 나타난 백인 여자에게 일본인들은 병을 고쳐 달라고 떼을 썼다는 얘기도 있다.
현대 사회에서도 인류 문명 보다 월등하다고 생각되는 외계인이 나타나면 불치 병 환자들이 맨먼저 달려 갈지도
모를 일이다. 공상 과학 영화 <제5원소>나 방송의 <스타트랙>에서도 심심치 않게 신비스런 미래 의학이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덧붙이면 "점안"이라는 단어가 생각나게 하는 것은 보는 능력에 초인성을 부과하는 것이 결코 서구 근대 사회의 특권이 아닐 거라는
추측이 들게 한다. 점을 치는 것은 미래를 "보는" 것이다. 물론 근대 사회에서 촉각과 후각의 비중은 많이 약화되었다지만 여전히 과
거에도 시각에 특권이 주어졌을 것 같다. 그것은 아마 개의 특기가 코와 귀고 박쥐의 특기가 초음파인 것 처럼 인간의 특기가 망막이
라는 생물학적 이유 때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