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월동 (22. 한국말 하면 안돼요.)
중학교 1학년 때 일이었다.
옆집 살던 누나가 미군과 결혼해서 미국으로 떠났다.
남편이 일찍 죽는 바람에 친정어머니, 6살짜리 아이와 같이 살고 있었는데
당시 이 동네에서 가장 손쉬운 돈벌이 방법인 미군부대에 취직을 했었다.
미군 부대 안에서는 청소일 부터 식당 서빙, 그리고 캐셔(casher), PX까지
처음에는 잡다한 일부터 시작해서 운이 따라준다면 돈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좋은 곳으로 옮길 수 있었다.
어떤 아가씨들은 그 안에서 미군들과 친해져 같이 살다가
미군들이 본국으로 들어갈 때 버림을 받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결혼해서 미국으로 가기도 했었다.
옆집 누나는 아이를 데리고 같이 미국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한국에 있었으면 재혼하기도 힘들었을 텐데 장교와 결혼해서 미국으로 들어가는 것도 괜찮을 거라고
동네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을 들었었다.
일 년쯤 지난 뒤 그 누나가 아이를 데리고 잠깐 친정에 나왔을 때
우리 집 앞 계단에서 동네 아이들이 그 아이를 둘러싸고 이것저것을 물어보고 있었다.
그 아이는 제법 버터 바른 발음으로 '버튼'이니 '스쿨'이니 하는 단어들을 아이들이 묻는 대로 대답해 주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동네아이들의 우리말을 알아들으면서도 전부 영어로 대답하는 게 이상해서
'너 한국말은 못하니?'라고 내가 물었더니
그 아이는 망설이다가 대답을 했다.
'나 한국말 하면 대디와 마미한테 혼나요'
벌써 20년도 더 지났는데 그 아이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