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dyssee #53     바람이 우는 건 아닐 것이다 이 폭우 속에서 미친 듯 우는 것이 바람은 아닐 것이다 번개가 창문을 때리는 순간 얼핏 드러났다가 끝내 완성되지 않는 얼굴, 이제 보니 한 뼘쯤 열려진 창 틈으로 누군가 필사적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것 같다 울음소리는 그 틈에서 요동치고 있다 물줄기가 격랑에서 소리를 내듯 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없는 좁은 틈에서 누군가 울고 있다 창문을 닫으니 울음소리는 더 커진다 유리창에 들러붙는 빗방울들, 가로등 아래 나무 그림자가 일렁이고 있다 저 견딜 수 없는 울음은 빗방울들의 것, 나뭇잎들의 것, 또는 나뭇잎을 잃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부딪치는 나뭇가지들의 것, 뿌리뽑히지 않으려고, 끝내 초월하지 않으려고 제 몸을 부싯돌처럼 켜대고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창 밖에 있다 내 안의 나무 한 그루 검게 일어선다 누가 우는가 - 나희덕 75mm, TX 2006.
no mad
2006-05-01 2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