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월동 (20. 허씨 아저씨네 쎄멘벽돌 담장)
아주 많이 기울어서 아슬아슬하게만 보이던
허씨 아저씨네 담장이 어느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크리스마스날 사탕받으러 첨 가보았던
집 앞 '영광교회'가 헐리고 없어질 때도
할아버지 식사 하시라고 찾아가던
집 뒤편 '경로당'이 사라지고 커다란 빌라가 들어설 때도
아저씨네 집 쎄멘벽돌 담장은 조금은 불안해보였지만 꿋꿋하게 버티고 서있었다.
아저씨네 벽돌담을 따라 학교로 내려갈 때,
봄이면 내가 좋아하는 라일락 꽃 향기에 향긋했고
여름에는 마당에서 들려오는 졸졸졸 물소리에 시원했고
가을은 그 너머로 뻗어 나온 푸른 가지의 대추에 달콤했고
겨울엔 할머니가 지피시는 장작불 연기에 구수했었다.
세월이 지나고 또 지나서
조카가 내 나이만큼 되었을 때
파란색 철제 담장을 보며 오늘을 생각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