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한 내사진
진정한 지구인이 된답시고 여행을 시작한 지 이제 꼭 9개월이 다 되었습니다.
그동안 다른 곳에 사는 지구인들의 모습을 수없이 사진기에 담았습니다.
그러나 중이 제머리 못깍는다고 정작 제 사진은 거의 없군요.
그래서 친구들이나 부모님에게 '놈의 사진만 찍지 말고 네 사진도 좀 찍으라'는 핀잔을 곧잘 듣곤 합니다.
그러나 사진기가 좀 큰 지라 셀카 찍기에도 좀 뭐하고
그렇다고 남에게 맡기자니 혹시 떨어뜨리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표정 하나 제대로 지을 수가 없습니다.
결국 남은 방법은 다른 사람이 그의 사진기로 저를 찍어주는 것인데
다니는 곳들이 나름대로 외진 곳들이다 보니 친구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군요.
그런데 얼마전 늦은 오후 이곳 함피에서 한국인 형을 한명 만났습니다.
그날은 이 형과 함께 근처에서 일몰보기 가장 좋다는 언덕을 올라가는 길이었죠.
그러던 중 한 가족을 만나게 되었고, 저는 늘 그렇듯 5분 여를 투자해 열심히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들과 헤어진 후 형이 저를 찍었다며 자기 카메라의 LCD를 보여주더군요.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사진 속에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여행의 의미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 같았습니다.
사진기를 통해 다른 지구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들의 모습을 담고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여행.
대충 얼버무리자면 이런 게 될까요?
어쨌든 저는 형이 찍어준 사진이 너무나 좋습니다.
이 사진 하나로 앞으로의 남은 여행에 대한 의지가 더욱 더 살아났음은 물론이구요,
지극히 사실적이고 단순한 사진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줄 수 있는 사진을 찍기 위해
지금보다 훨씬 노력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이제 두달 여 후 인도 여행이 끝나면 중동과 아프리카입니다.
이 사진마냥 앞으로도 행복한 사진찍기, 그리고 여행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계속 지켜봐주세요.
@ Hampi, In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