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월동 (18. 셋방 있나요?)
때마침 저 옆 관광버스에선 한무리의 미국인들이 쏟아져 나와서
이 꼬마 아가씨들을 쳐다보며 재미있는듯 웃으며 지나가도
이 당찬 아가씨들은 그런 그들의 시선은 전혀 개의치 않고 자신들의 물건을 팔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 아가씨들 나이 무렵에 나는 연년생 형과 함께 동네 아이들의 딱지를 엄청나게 땄던 적이 있었다.
당시 형과 나는 넘쳐나는 딱지를 어쩔까 고민을 하다가 다른아이들에게 팔기로 하고
집 대문 앞에다 공책을 찢어 '딱지 팝니다.'라고 써붙였다.
그런데 다음날 저녁 쯤 한 부부가 셋방이 있느냐며 문을 두드렸는데
대문 앞에 종이가 붙어있는 것을 보고 셋방이 있는 줄 알았다는 거였다.
어머니께 꾸중을 듣고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나의 상행위는 그렇게 모두의 헛수고로 막을 내렸다.
번화하지만 외국인들과 나이가 한참 많은 어른들이 주로 다니는 길목에
이 꼬마 아가씨들이 들고나온 품목을 보니 심히 걱정스러웠다.
자신들이 입던 옷가지며 별로 재미없어 보이는 동화책, 안 이쁜 인형, 설치 디스크 없는 화상캠...
그렇지만 이 아가씨들의 밝고 티없는 미소와 태연자약한 태도, 겁없는 두둑한 배짱을 보면
절대 헛수고는 아닌 듯하다.
정작 헛수고는 바로 그 앞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