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맑뜨의 성심성당
1870년에 있었던 보불전쟁의 참패와 그후 프러시아에 대한 프랑스 제3공화정의 항복협정이 있은 후 몽맑뜨 지역의 주민들은 이 언덕 위에 171문의 화포를 설치하고 프러시아 및 정부군과 대치했다고 한다. 이에 시민군을 해산하기 위한 정부군이 투입되었고 이 과정에서 시민군에 의해 정부군이 살해되는 등 유혈사태가 발생하였다. 결국 흉흉했던 민심은 빠리꼬뮌으로 이어졌으며 이후 프랑스 의회는 이러한 국가적 시련을 가져온데 따른 책임과 온 국민의 대동단결의 취지를 내세워 1873년 성심성당의 건립을 추진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