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월동 (16. 주스 한잔)
뭐! 나는 예나 지금이나 음주가무(飮酒歌舞)에는 별로 소질이 없어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고등학교을 갓 졸업해서 한창 놀 나이 때 친구들은 나이트 보다는 club을 선호했다.
이곳의 수없이 많은 클럽에선 맥주 한 병만 시키고도 밤새도록 마음껏 춤을 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그곳은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곳이었다.
어둡고 지저분한 계단에선 퀴퀴하고 시큼한 냄새가 났고, 벽에는 붉은 스프레이로 뜻도 모를 영어 낙서가 휘갈겨져 있었다.
(이런~! Fuck이란 단어만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깔끔하게 차려입은 웨이터들 대신에 산전수전 다 겪은듯한 여인네들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맥주를 들고왔다.
춤추는 사람들은 거의 다 한국사람들이었고, 미군들은 테이블에 앉아 아가씨들과 노닥거리기만 했다.
노래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아가씨들은 차례 차례로 순서를 바꿔가며 제일 높은 스테이지로 올라가서 야한 몸짓으로 춤을 췄고,
미군들은 그런 그녀들을 음흉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마치 발정난 숫캐처럼...
나이가 어리고 예쁜 아가씨들은 부르는 단골이 많아 이리저리 바쁘게 몸을 움직였지만,
나이가 많고 별로 인기가 없는 아가씨들은 홀아줌마들이 처음 온 듯 보이는 초짜 미군과 연결시켜 주었다.
나이가 많든 적든 일단 아가씨들은 미군 앞에 앉자마자 교태스런 몸짓을 보이며 '주스'를 사달라고 졸랐고,
다른 목적을 갖고있는 미군들에게 그깟 주스 한 잔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처음 클럽에 들른 나도 짐작할 수 있듯 그 '주스'가 그 날 그녀들이 받는 주 수입원이었다.
때문에 그녀들은 '주스'를 시키기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곤 했었다.
그 당시만해도 그녀들은 전국각지에서 이곳으로 흘러들어왔고 길을 가다보면 늘상 마주치곤 했다.
지금은 머나먼 곳에서 온 그녀들로 바뀌었을 뿐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 안에선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을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