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서 띄우는 편지... 열여덟번째(천왕일출.)
잠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새벽 4시, 5시가 문제가 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태풍이 오나 일단은 가봐야 한다.
그것이 실망일지 환희일지는 기다려야만 알 수 있었다.
그 기다림은 그리 힘든 시간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설레임으로 살 수만 있다면 그보다 행복한 삶은 없는 것이었다.
바람이 불어왔다.
개스의 흐름이 점점 빨라지며 또다시 온 천지가 변화를 시작한다.
밤에서 낮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죽음에서 삶으로...
그리고 드디어 나와 마주섰다.
또다시 망연자실.
또다시 한가닥 희망을 품는다.
덕분에 당분간은 삶에 있어
결코 약해지거나 어리석어지거나 가볍지 않을 수 있다.
그 모습속에 내가 녹아들어 내 안에서 매일매일 뜨고 질 터이니...
2006.02.21. 지리산 천왕봉(1,915m)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