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의 삶
나는 얼마나 쉬운 삶을 살고 있는 거냐. 버거킹에서 30초 만에 와퍼 세트를 사먹을 수 있고 버스를 탈 때는 돈 대신 카드를 사용한다. 교통카드와 기능이 합쳐진 얄팍한 신용카드를 단말기에 대기만 하면 1초 만에 버스는 나의 탑승을 허가한다. 그것은 지하철도 마찬가지다. 그 외에도 신용카드는 어떤 물건이든지 15초안에 살 수 있도록 편리함을 제공한다. 우리 집은 쇠로 만든 열쇠를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전자식 번호 키를 사용한다. 집에 들어갈 때는 몇 개의키만 누르면 집은 나를 주인으로 인정한다. 문을 잠글 때는 더 쉽다. 기역자로 생긴 손잡이를 잡고 살짝 위로 들어 올리면 문은 잠긴다. 침대 위에는 버튼만 누르면 수 분 내로 따뜻해지는 전기 매트가 있다. 아무리 추운 날도 밤새도록 뜨거운 바닥에 등을 지질 수 있다.
나는 굉장히 쉬운 삶을 살고 있다. 내가 가진 디지털카메라 미놀타 다이낙스 7D는 완전한 수동 설정에서부터 100퍼센트 자동 설정까지 제공한다. 경우에 따라는 그 커다란 카메라를 손바닥 크기의 자동카메라처럼 설정으로 해서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은 잘만 나온다. 물론 이런 편리함은 최소한 약 1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들어간다.
인터넷 쇼핑몰은 모든 종류의 책과 학용품, 음반, 옷, 신발, 심지어는 먹을 것 까지도 하루나 이틀 만에 받아 볼 수 있도록 배송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TV 홈쇼핑의 경우는 전화 한통화로 몇 시간 내에 물건을 받을 수도 있다. 컴퓨터가 어떻게 켜지고 꺼지는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궁금하지도 않다. 전원을 누르면 바이오스 화면이 몇 초간 켜지고 다음으로는 모니터가 몇 번 깜박거린 다음에 윈도우XP의 화면으로 넘어간 다음 그 밑으로 지렁이가 서 너 마리 지나가면 메인 화면으로 인도한다. 그리곤 끝이다. 마우스만 움직이면 게임에서부터 웹서핑, 메일 확인, 프로그래밍, 경우에 따라선 심각한 포르노나 허슬러에 이르기까지 별별 것을 다 제공한다. 이게 바로 편한 삶이다.
그러다가 나는 지친 것 같다. 나는 머리가 둔해지고 손가락이 떨리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무엇을 하든 조급하게 처리하는 내 자신을 알아차리고 난 다음부터 나는 편리한 삶에 점점 지쳐가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나를 편하게 내버려두면 나는 편하게 살다가 편하게 죽어가는 하나의 동물이 될 것 같아서 역겹다. 해답은 가까운데 편리한 내 손은 먼 곳을 헤집고 있다.
아날로그의 삶은 여러 가지 해답 중 하나다. 나는 앞으로도 몇 가지를 더 찾아야 한다. 하지만 급하지 않게 할 것이다. 삶의 해답을 찾는 일은 결코 편리하지 않은 것임을 알기에 나는 그만 편안한 소파에서 일어나 굳어버린 다리를 움직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