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투쟁
Photo By Skyraider
출근 길에 사방을 둘러보니 여기저기 ‘농성장’이라는 글귀들이 어지럽게 붙어있었다.
회사 건물 2층에 자리잡은 영화협회 감독 시사장에서 스크린쿼터 축소에 항의하는 영화인들의 농성이 진행되고 있던 것.
이번 영화인들의 농성은 여러면에서 여론의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높은 행동인만큼 훨씬 조심스럽고 조용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영화의 경쟁력이 이미 꽤 높아졌다고 믿는 마당에 영화인들의 농성은 자칫 ‘엄살’로 보이기 딱 좋은 상태니까. 하지만, ‘말아톤’이전까지 우리 영화의 점유율이 20%에 턱걸이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별로 없다. 그만큼 이 바닥의 저변이 박약하다는 뜻이지만, 올 설 연휴 극장가를 돌아본 영화팬들은 그런 증상을 당연히 느끼기 어려웠을 것이다. 예를 들어 어제 충무로 M극장의 경우, 상영중인 일곱 편의 영화 가운데 다섯 편이 한국영화 였다.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극장가는 유난히 한국영화의 강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흥행에 실패하기는 했지만 ‘태풍’으로 시작해 흥행신기록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왕의 남자’, 연휴극장가 태풍의 눈이었던 ‘투사부일체’, 배급사와의 불화로 문제가 있었지만 여전히 선전중인 ‘홀리데이’, 잔잔함으로 조용히 그 힘을 키워가고 있는 ‘사랑을 놓치다’까지, 죄다 한국영화 일색이다. 하지만, 이런 외형과 달리 한국영화 시장은 한 편의 블록버스터가 실패하면 다른 영화의 제작자체가 어려워지는 엷은 시장구조 위에 올라선 ‘모래성’이라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2002년, 120억이 투입되었던 장선우 감독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의 실패는 이후 대작영화에 대한 투자자체가 얼어붙는 결과로 나타났고, 흥행 보증 수표로 불리는 배우를 출연시키는 영화에만 치중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 자체의 제작비는 줄어들고 출연하는 배우에 대한 개런티는 높아지는 악순환이 일어나게 되었지만 영화 흥행자체는 웬만큼 일궈내는 제로섬 게임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스크린 쿼터의 축소는 외형상 전적으로 ‘시장원리의 도입’이라는 면으로 접근되고 있지만 그 안에는 이처럼 여전히 박약한 한국영화의 현주소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배우 최민식이 어제 농성장에서 말한 것처럼, 이번 정부의 결정이 뒤집어지기는 ‘죽은 아이 살아나길 기대하는 것’처럼 요원하기만 하다. 외형적인 성장과 여론을 등에 업고 벌이는 정부의 결정에 맞서기에는 너무나 현재의 상황이 잘 알려져 있지 않으니까. 어찌되었건 이번 결정에 따라 요동칠 한국 영화판이 사뭇 걱정되는 것은 여전히 내 눈에도 높아진 한국영화의 수준과 극장 간판이 아른거리기 때문이 아닐까.
제발 내 눈에 보이는 것이 신기루가 아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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