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대신 꿈을 꾸는 이
Photo By Skyraider
1991년 1월,
멀쩡한 몸으로 군에 입대한 형은 6주의 훈련을 마치고 퇴소했다.
하지만, 퇴소 당시의 형의 몸무게는 41키로그램...
입대 당시 175에 67키로까지 나가던 건강한 모습은 그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군대'라는 조직은 한 달여 동안 26키로 빠지는 비정상적인 모습에서도 그를 보호하지 않았고, 결국 그는
자대배치 한 달 후 뇌종양이라는 판정을 받게 된다.
평생 소원이시라고는 통일이 되어 그리운 고향 땅을 밟아보시는 것 밖에 없으셨던 내 할아버지.
병치레를 모르는 건강한 분이셨지만 집안대대로 병력을 가지고 있던 당뇨에 의한 설암으로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형이 군대가기 두 달전 수술을 받으셨다.
병원에서 형이 뇌종양이라는 소식을 듣고 발을 동동구르시던 할아버지,
수술 경과가 좋아 완치도 바라볼 수 있다는 의사선생님 앞에서 형의 병명을 물어보시며 어떤 치료가 좋은지 소상히 적으시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91년 4월, 형은 당시에는 최신형 진단기인 MRI촬영을 위해 통합병원에서 서울대학 병원을 찾았고, 그곳에서 잠시였지만
할아버지를 뵐 수 있었다. 형의 손을 쥐고 "너는 꼭 나을 것이다."
라고 힘을 주시던 할아버지, 형이 병원으로 돌아가고 나서 어머니와 작은 어머니께 뼈있는 말씀을 전하셨다.
"신이 무심치 않으시다면 우성이는 나을 것이다. 내 목숨이라도 거두어서 녀석이 낫는다면 그랬으면 좋겠구나..."
좋은 경과를 낙관하던 의사선생님의 진단과 달리, 형을 만나고 정확히 한 달 후, 할아버지는 그토록 밟아보시고 싶던 귀향의
꿈을 접으신 채 하늘로 돌아가셨다.
..하지만, 그의 바램처럼 의사들도 완치를 장담못하던 형은 공식적으로 완치판정을 받고 일 년에 한 번가는 병원도 가기
싫어하는 날라리 통원환자로 건강하게 지내고있다.
이제 대신 할아버지의 꿈을 짊어진 형, 그 앞에서 나도 함께 할아버지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하루하루 기원한다.
모쪼록 '통일'이 우리 세대에 이루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