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Cynthia Maung
신시아 몽 (Cynthia Maung)
1959년 겨울, 물메인이라는 도시 변두리의 카렌족 가정에서
일곱아이중에 네번째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마치면서 신시아는 동급생들 수만명과 함께 국가에서 치르는 시험을 치루고
이 시험에서 최고 성적을 받은 500명안에 들어 랑군 의과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의대 졸업후에는 랑군 근처의 오칼라파병원등에서 훈련을 받는다.
수련기간을 마친 몇년뒤인 1988년, 오칼라파 지역에서는 군대가
데모대에게 발포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2000여명이 이때 목숨을 잃는다.
(정확한 숫자는 알수 없음)
혼란은 전국으로 번져, 카렌족 마을에서 작은 진료소를 하는 신시아도
국경너머 태국으로 피난을 떠난다.
낮에는 자고 밤에는 정글속을 걸어서
며칠뒤에 매솟에 있는 후어이칼록 카렌족 난민 캠프에 정착하게된다.
이곳에서 말라리아와 전투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간이 진료소를 열어서
사람들을 치료하면서, 신시아는 두어달 뒤면 다시 자신의 작은 병원으로 돌아갈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신시아는 매솟에 머물고 있다.
알미늄 냄비에 물을 끓여 의료기를 소독해가면서
하루 150명의 환자를 진료하고
한달에 20여명의 출산을 돕고
일년에 30여명의 의료요원을 가르치면서 지낸다.
막사이사이 상 수상자.
말없는 행동가....
참조
http://faculty.washington.edu/kwangett/burma/
2003년 6월 29일
Mae Sot의 Burmese Correspondence Club Opening 행사하던 중에....
이미 이름이 많이 알려진 그녀지만,
스스로 난민신분이라서인지 되도록 남의 앞에 나서기를 꺼린다.
버마의 민주화 운동이나 인권문제에 관련된 행사에 늘 불려 나와서 단상에 앉혀 지지만.
가만히 앉아서 듣고만 있다가, 총총 진료소에 돌아간다.
(맞은편의 버마내 실정을 폭로하는 여인의 티셔츠에 버마인의 유일한 희망인
아웅산 수지의 얼굴이 보인다)
Nikon FM2,
T400C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