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월동 (8. 할머니 막걸리 주세요!)
전 지금 기분이 무척 좋답니다.
왜냐하면요, 엄마가 주전자를 주시며 막걸리를 받아오라고 하셨기 때문이죠..
전 부리나케 주전자를 들고 한달음에 대문을 나서 울퉁불퉁 골목길을 뛰어 내려가
그 맨 끝 골목 귀퉁이에 자리 잡은 할머니 구멍가게로 들어갔습니다.
할머니 가게로 들어서면 시원한 황토 흙냄새가 났습니다.
구멍가게는 '쎄멘'바닥이 아닌 황토 흙바닥이었고 천장에는 조그마한 5촉짜리 백열등 하나만 달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무로 짜놓은 좌판에는 먹을 것이 한가득 놓여 있었습니다.
'눈깔사탕', '무지개 쫀득이', 그리고 '연양갱'...
하지만 오늘은 연양갱을 사먹으러 온 게 아닙니다.
" 할머니! 엄마가 막걸리 사오래요.."
그러면 할머니는 한쪽에 쳐져있던 발을 걷으시고 주둥아리가 땅 속까지 파묻혀 있는
커다란 독의 뚜껑을 열고 제가 가져온 주전자에 휘휘 저은 막걸리를 한가득 따라 주셨습니다.
전 그 막걸리의 시큼한 냄새를 맡으며 즐거운 맘으로 다시 한달음에 집까지 뛰어 왔습니다.
오늘은 엄마가 '찐빵'을 해주신답니다.
'찐빵'을 발효시키기 위해 막걸리가 필요한 거죠...
잠시 후면 달콤한 팥 앙꼬가 들어간 '찐빵'을 맘껏 먹을 수 있답니다.
그러니 기분이 좋을 수 밖에요...
할머니 구멍가게는 오래 전부터 문이 닫혀있었지만 황토 흙바닥에서 익어가던 막걸리 향기는 아직 그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