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을 길 (충남 공주 교도소) 가을이 깊다. 멀리 타향에 살면서 익숙한 이 길을 찍고 돌아 온 날은 늘 웬지 더 외로워졌다. 휑한 그 길을 남자혼자 가을로 걷는다. 손가락, 하나 둘 접으며 꼽으니 '사랑'을 해본적이 별로 없는 남자는 애써 추억을 쥐어짜내어 이미 얼굴도 잊은 첫사랑을 가슴 깊이 되새긴다 서른이 다 되어 사랑을 운운한다는 것 조차 가을이기에, 솔로 남자이기에 용서될 애교? 정도가 아닐까하지만 스스로 용서하지 못하고 지나는 사람 눈치를 본다 괜히. 가을... 그 끝에서 저리 환하고 운치있는 분위기를 연기하는 길은 사실 교도소 진입로다. 작년 이맘때 예서 사진을 찍는데, 한 가족이 슬프고 상기된 얼굴로 바람결에 노란잎을 비처럼 맞으며 걸어 왔었다. 그들이 멀리서 걸어 올 땐 그림같은 분위기에 단풍구경차 온 가족인 줄 알았지만.... 세 번째 셔터를 누를 때 지나치는 그들, 그들 중 늙은 어미가 흘린 말을 들으니 아들 찾아온 면회객 이었다. 도둑놈, 살인자, 강간범, 사기꾼도 은행잎 노랗게 물든 가을에 어리광 부리는 아들이 되어, 먼길 찾아온 어미가슴에 얼굴을 묻는다. 어미의 가슴을 치며, 내가 훔친 것은 돈 몇 푼이 아니라 어미 맘고생이라 사람같은 소리를 한다. 어미는 긴 은행나무길 끝, 남루한 면회소에서도 돈이 없어 가르치지 못한 당신을 탓한다. 끌어 안은 아들 눈에서 흐르는 뜨거운 고해를 무식하고, 돈없는 어미가슴에 되묻는다. 다 당신 탓이다. 좀 더 가르쳤다면, 좀 더 뭔가 해줄 수 있는 어미였다면 아들이 이리될 녀석은 절대로 아닌데.... 마치 나 처럼 재소자 들어겐 이미 담장 하나가 타향이다. 스스로 거세해버린 자유의 참 의미를 저 안에서 곱씹으며 한 해 한 해 버텨낸다. 벌써 3년하고도 반이 지났다. 젊음을 쉽게 생각한 죄, 함부로 인생을 저당잡힌 죄로 나 역시 보이지 않는 담장에 수감되어 있다. 가끔 어미를 본다. 어미는 두어 달 만에 찾아오는 아들을 만나고, 아들은 볼때마다 두어 달 씩 늙어 있는 어미를 만난다. 사내처럼 강직했던 어미는 세월에 밀려 점점 늙어간다. 평소 잘 드시지도 않는 고기를 다 씹지도 않고 삼키실땐 아들가슴이 미어진다. 그리하여 그때만큼은 나라도 충성도 싫어지고, 어미 고기 사드린 알량한 월급도 싫어진다. 모든게 싫어질 때 쯤 떠날 채비를 하며, 아들 발걸음 끝자락까지 따라와 이 걱정 저 걱정 되싸주는 어미마저 싫지면 떠났었다. 저 사진을 찍고, 전출 온 부대의 작은 방에서 저 사진을 보며 홀로 술을 한 잔 한다. 역시나 올해 찍은 저 사진도 나를 슬프게 한다. 후년엔 찍을 못할 사진이기에 더 진하게 본다 오늘밤.
kundera
2005-11-07 2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