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 제 - 喪 (전남 광주 영안실) 부대 동료가 부친상을 당한다. 광주로 간다. 광주로. 터미널에서의 광주에 대한 첫 느낌! 알량한 역사지식으로 '광''주'가 주는 느낌은 무겁고, 버거웠으나 이미 광주는 수원과 대전과 다를 바가 없는 그저 큰 도시였다. 빈손는 조용하고 조금 휑한 느낌이 들었다. 망자와 상주에게 절을 한다. 아무 소리도 없다. 향연의 괘적이 영정을 배경으로 또렷했고, 그 고요를 긁는 듯한 옷의 마찰음이 조금 거북했다. 가정의례준칙에 허례허식을 막기위해 정했다는 저 완장. 상주는 두줄, 상주의 친인척은 한 줄, 결혼하지 않은 이는 줄이 없는.... 마치 군대 계급장처럼 삭막했다. 아마도 박정희때 정했다는 준칙이어서 다소 군대틱 한 걸까? 후두암으로 별세하셨다는 고인은 아직 그에게만은 죽지않았음을 안다. 서서히 시간을 두고 그의 추억속에서 더 절실하고 잔인하게 죽어감을 안다. 그의 덤덤한 표정이 믿음직 하여 소주만 세잔하고 그저 그런 얘기를 나눈다. 나는 오래전 아비의 죽음을 기억하면서, 아비의 생죽음 보다 상주를 더 허탈하게 하는 너무 쉽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들의 화투에 집중했다. 이미 죽음에 가까워진 자들.... 죽음에 대해 무딘자들.... 십 수년 전, 그때 난 저들이 무심하다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숙연함과 원숙함에 감탄한다. 저들이라고 왜 슬프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들도 밟아야 할 길을 잠시 먼저 간 것 뿐이란 단순진실. 그저 인생 그 끝에서 세상을 다 잃은 양 운다는것이 더 코미디에 가깝다는 아이러니컬. 매우 단순한 진리를 그들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음을 이젠 어렵게 인정한다. 그들은 가끔 우리의 얘기를 끊는 둔탁한 소리를 낸다. 하지만 그게 상가의 풍경이다. 오래전에 보았을 영화에서 상례는 산자와 죽은자의 축제라고 했다. 화해하고, 이해하고, 보내고, 떠나는..... 슬픈 축제. ---------------------------------------------------------------------------------- 그의 임종때,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굴러 다니는 소주병 만큼 밤은 쉽게 취했고, 쉰 살 노모의 졸린 눈물도 주름가에 굵게 자국졌다. 별로 슬플것도 없는 취객들이 밤새 어린상주의 곡을 비웃었고, 누렇게 익은 별들은 무심하게 더 빛나기만 했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왜 아무렇지 않은지도 몰랐다. 지금도 그의 죽음을 기억하면서 나는 그때보다 더 어리게 울곤 한다. 그의 죽음을 잊은 줄 알았던 가족들은 여전히 소주병을 추억처럼 바라본다. 가끔은 몇장의 사진을 들춰보며, 채 가시지 않은 상처를 스스로 만져보곤 한다. 그러나 쪽마루 어느 구석에도 술에 취해 웅크리고 있는 그는 없었고, 어느 술집 마당귀에도 쓰레기처럼 뒹굴고 있는 그는 더 이상 없었다. 이제 그는 기억으로만 살아 있을 뿐 가족중 어느누구도 그를 실감할 수 없었다. 그리움 깊이 사무치는 가을 어느날 꿈자리를 제외하곤 말이다. ------------------------------------------------------(아주 오래전에 썼던 일기 中)
kundera
2005-10-31 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