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을 인 생 론 (충남 우성 금강원)
생 애 #1
"가진거 의지할 거 없는데 겁날 게 무에 있어....
내가 돈이 있나 남들 다 있는 남편이 있나 자식이 있나.
그저 피난 내려와....."
할머니는 북에서 살았고, 다 버리고 피난을 왔단다.
남한이 살기 좋다고는 했지만 무일푼에 배운 것 없는 당신에겐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었단다.
결혼을 했는데 자식딸린 남자였단다. 남의 자식 키우기 쉽지 않다고...
남편 사후 자식들에게 다 빼앗겼단다.
남편도 죽고 자식들은 이미 내 자식들 아니니 죽음도 겁없단다.
아니 되려 빨리 죽고 싶단다.
이곳 생활이 편하긴 하되 아무런 재미가 없으시단다.
그러면서 우시더라..... 우시더라.....
난 그래서 할머니가 절대 스스로 죽지는 않을 거란 확신을 했다.
실컷 눈물을 쏟아낸 할머니는 손자뻘되는 내게 실없는 소리를 했다는 듯
입을 닫고 먼 곳을 바라본다 슬프게.
가을 태양빛에 노오란 은행잎이 더 투명해 진다.
그 인생만큼 자신을 거의 다 소진해버린 은행나무의 느낌에 조금 무안해진다.
그리고 문득 멀리서 홀로 울지도 모를 어미 생각을 한다.
생 애 #2
딸아이와 아들이 있다고한다. 어제도 통화를 했다고 한다.
딸아이는 계속 울기만 했단다.
아들말이... '지금은 가난하나 돈 많이 벌어 큰 집사면 모시겠다'고 했단다.
난 할머니에게 아들 딸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난 할머의 딸이 계속 울었는지 모른다.
난 할머니의 아들이 큰집을 살지... 정말 모른다.
하지만 처음보는 내게, 묻지도 않은 아들 딸의 궁색한 핑계를 대신 댄다.
'바빠서 그래....', '지금은 많이 못 살아 그래....', '다들 착해....'
'어제도 전화해서 계속 울던걸....'
바쁘고, 불가피한 가난에 허덕이고, 분명히 착하고, 어제도 전화해서 울었다는
그 아들 딸들이 오늘 나를 외롭게 한다.
먼 타향에서 홀로 살다보니 나 역시 어미 생각이 간절할 때가 많다.
막상 어미 면전에선 어린아이가 되어 온갖 투정을 다 부리면서도
인생을 다 이해한 양, 하룻밤에 득도한 양 커다란 어른의 감정으로 어미가 그리울 때가
분명 내게도 있다.
난 얼마나 깍쟁이 세대인가. 저들 세대는 전쟁, 가난, 그리고 헌신이란 이름으로
제 몸까지 다 깍아 나눠줬는데.... 그것이 습관이 되어 지금도 나와 깥은 이기적인
세대와 섞여 속고 또 속는데....
난 더 얼마나 얄밉게 살 것인가.
어쩌면 난 저들의 인생굴곡을 한편의 글과 한 장의 사진으로
인용하여, 가을남자의 기분을 한 껏 내진 않았는가.
어미, 누이가 그리워진다.
밤은 가을향에 취해 쉽게 잠들고
까닭없이 외로운 타향의 아들은 알콜기운으로 잠들지 못하고 잠시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