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 전 팔 기 하 라 (충남 의당 벼세우기)
그를 보면서 오래전 아비를 생각하다.
그의 노동과
그의 억척스러움에
내 좌절에 대한 아비 핑계가 무색해 지다.
열심히, 열심히 살아야 한다 내 스스로에게.
그의 검붉은 피부와 더러운 옷차림, 면도가 덜 된 굵고 흰 수염.
아주 오래전 난 아비가 저리 살았다면... 하고 소망했다.
삶은 호사스런 치장과 과장이 아니라
매 순간 스스로에게 절실하고 떳떳한 '삶에 이유'를 제시하는 것이리라.
더러는 저 벼이삭 하나가 삶에 이유일 지라도
가치는 질과 양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자기 통찰이며, 확신이리라 다짐했다.
그는 볏짚을 조심스레, 꼭 껴안는다. 갑작스런 돌풍앞에 쓰러진 벼를 보며 절규한다.
그건 한 해 농사, 한 해 수익부터 따져보는 우리시대 언어로는 읽힐 수 없는
저들 세대의 특유의 언어법이다.
간간이 비는 내리고, 발목은 이미 수렁에 잠겨 걷기 힘들지라도
그는 이를 버텨낸다. 점심에 반주로 마신 막걸리의 기운이 뜨겁게
빈 인생을 돋구어올 때쯤 그는 허허롭게 입을 벌리고
자연에, 그리고 구질구질해 보일 수도 있는 자신의, 자신의 삶에 항거한다.
한 여름 검푸른 논두렁 속의 그는 분명 초라하다.
자연앞에, 지금 이 시대 속에 나는 더 얼마나 초라하랴.
가끔은 어미가 너무 보고싶다.
문득 보고싶다는 가벼운 충동을 이는 첫사랑보다 가슴시리게 어미가 더 보고싶다. 가족이 보고싶다.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내면서
모든 지적, 경험적 허영을 걷어 낸다면 초라한 몸뚱이만 남게 될 게다,
그런 몸뚱이를 다시 지적인 무한한 가능성으로 보아주는 가족이 그 끝에 홀로 남아 있다.
오래 전 술취한 아비는 밭둑 한 켠 풀섶에 풀처럼 누워있고, 그 큰 밭에 고랑을 내고,
비닐을 씌우고, 구멍을 내고, 모종을 심고, 불을 주던 어미와 내가 기억된다.
그 때, 바로 그 때, 난 점차 아비가 되어갔다. 아비 역할을 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어떤 불가능함 앞에서도 자신을 잃지않고, 묵묵히 그 불가능에 파묻혀 있기로.
"엄마! 난 가을이 제일 싫어."
"왜?"
"남들은 누렇게 익은 저 눈에서 뭔가 수확할 게 있는데 우린 없잖아."
"......"
어미에게 회초리를 맞고, 시커먼 천장아래 찬장 속 어미 동전통에서 몇 백원을 훔쳐내고,
아비에게 실컷 맞은 어미를 달래고, 식구 다 버린 채 가겠다고 나선 어미를 붙들고 울고 또 울다 잠이들고,
고금산에서 풀 한지게를 메고 온 어미의 땀냄새가 '어미냄새'라며 꼭 끌어안고 잠들고,
어미 고생 꼭 갚겠다고 장담을 하기도 하였었다.
그러길 이십 수년이 지나고
나 그때보다 더 철부지 아들이 되어
늘 어미를 애태운다.
이제 어미의, 어미에게 부여된 삶에 시간도 많이 남지 않았는데
멀리서 아들은 이리 철부지로 살고 있다.
오늘은 저 사진 속 이름모를 주인공을 보고, 아비 생각, 어미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쉬 좌절하고, 한탄할 나이가 내 나이였다면 어미가 어찌 살았을까?
칠전팔기 하라... 칠전팔기 해야한다.